날 향한 모두의 좋아요: 인정 중독입니다

아홉 번째. 고장 난 나침반 수리

by yErA

운칠기삼(運七技三)

어떤 일을 성취하는 데 운이 7할이고 재주나 노력이 3할이라는 뜻이라 한다. 성공하는 데 있어 우연이나 행운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크다는 의미다.


나는 3할에 해당하는 노력과 성공의 인과론에 모든 초점을 맞춰왔다. 자기 계발서를 탐독했던 나다. 성공하기 위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법칙을 좋아했다. 행운의 힘을 과대평가하거나 노력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늘을 감동시킬 만한 노력은 세상을 바꿀만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전제조건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몰입을 위해 애쓰는 에너지가 남의 시선을 맞추는데 급급해 나를 조금씩 갉아먹는 게 아니라 나의 내면을 충만하게끔 설정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전제조건이 제대로 설정되지 않았던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전진할수록 에너지 누수가 컸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주위의 '좋아요' 평가가 나를 버티게 하는 동력이었다. 이런 목표가 틀렸다고 생각한 적은 딱히 없었다. 오히려 괜찮은 줄 알았고 꽤 잘하고 있다고 토닥였다. 지칠 때마다 잘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평범하지만, 아니 평범하기 때문에 더욱더 비범한 평가를 원했다. 그렇게 애쓰는 내가 대견했다. 인정이라는 달콤한 보상을 위해서는 노력과 인내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막무가내 노력 이상으로 운이나 우연의 비중이 클 수 있다는 것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과장된 능력주의를 맹목적으로 믿었다는 것을. 나를 향해 에너지를 채우기보다는 에너지를 애써 밖으로 발산하고 있다는 것을. 나만의 스토리를 쓰기보다는 남의 스토리를 받아쓰는데 급급했다는 것을. 제대로 인정 중독된 상태라는 것을.


알랭 드 보통이 불안을 얘기한 대목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1]

내가 발을 동동 구르며 불안 초조해하는 이유를 얄미울 만큼 잘 알려주는 듯하다. 외부의 판단과 기준이 아무런 필터 없이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었던 셈이다.

또다시 뼈저리게 느낀다. 나를 쳐다보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있었어야 했다.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나이인 불혹에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오라면 어쩌라는 건가. 내 계획대로라면 어느 한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어 제대로 잘난 척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눈에 초점이 풀려 멍한 상태가 됐으니 정말 답답할 노릇이다.

그렇다 해서 10대처럼 앞머리로 눈을 다 가린 채 어둠 속으로 잠수를 탈 용기조차 없지 않은가. 자아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순례자의 길을 찾아 훌쩍 떠나기에는 책임감세운 이성적인 사고가 너무 확고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나만의 인정 중독 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다. 결국 나를 제대로 만나고 나를 그려나가야 하겠지. 외부로 향한 시선을 나를 향하게 해야겠지. 바깥 기준에 엮어 맨 나를 좀 놓아줘야겠지.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던지 괜찮다고 토닥여야겠지.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나침반을 이제 제대로 조정해야겠지.

문득 지금 자존감의 수준이 궁금해졌다.

10점 만점에 5.5.

결코 낮지 않다고 위로하기로 했다.

10을 향해 한 걸음을 뗐으니 말이다.


[1] 알랭 드 보통, 『불안』, 은행나무(2018),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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