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향한 모두의 좋아요: 인정 중독입니다

열세 번째. 치료 여정 #4

by yErA

끝이 없는 숙제 같아 두려웠다. 실수 없이 잘 해내야 하는 프로젝트 같았다.

남들은 아이를 처음 만나는 순간 기쁨의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는데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두렵고 막막했던 출산 과정이 무사히 끝난 안도감이 가장 먼저였다. 이것도 잠시, 일초 전만 하더라도 이 세상에 없던 존재가 갑자기 튀어나와 목청껏 울며 정신을 쏙 빼놓는데 뭔가 싶었다. 그러고는 잠시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돌아오더니 다시 왕왕거리는 울음으로 존재감을 뿜어내는 아기를 보자니 당혹스러웠다. 앞으로 계속 이런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묻고 또 물었다. 모성이라는 위대한 감정은 아이를 보는 순간부터 생기지 않는 것은 분명했다.

처음 마주하는 일에 의연할 줄 모르는 겁 많은 내가 꼬맹이와 익숙해지는데 분명 남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건강한 순둥이었고, 상대적으로 주위에서 육아에 대한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나는 육아의 긴장에 갇혀 엄청 예민하게 굴었다. 그러면서 육아는 내 적성에 맞지 않다면서 섣부른 결론을 내리며 사회생활에 더 자질이 있다고 위로했다. 육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억울해 자기 계발하는 시간에 더 열을 올렸다. 하루 24시간을 최대한 잘게 잘게 조각내며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엄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 곁에 오기 전 최고 아빠와 엄마를 본인이 선택해서 온 것이라고 말하는 아이의 엄마가 기꺼이 되어 있었다. 같이 있어도 보고 싶고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신께서 나를 잠시 멈춰 세우고, 낙심하는 내게 최고의 선물을 허락하신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내 삶에 물음표와 느낌표를 가득 채워주신 것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내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해독 과정이 아닌가 한다.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랑의 영역을 넓히고,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의 고귀함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 주셨다. 그리고 나도 그런 값진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랐음을 알게 해 주셨다.

하지만 여전히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여러모로 몹시 서투르다. 야무진 엄마는 나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틈틈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지만 그렇다고 아이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려 하지는 않는다. 나의 이상과 희망사항을 어느새 아이에게 투영하면서 아이를 통해서 인정 욕구를 채우고 싶어 한다. 우리 부모님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나는 또 다른 형태의 외부의 인정을 아이를 통해 바라곤 한다. 아이를 통해 나의 인정 욕구가 채워질 때의 그 짜릿함은 내가 이뤄낸 결실 이상다.

하지만 내가 인정의 굴레를 아이에게 씌울 경우 그 결과는 훨씬 나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적어도 나는 자발적으로 이 굴레를 썼지만, 내 아이는 타의적으로 인정의 늪에 빠지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나는 굳은 다짐을 한다. 적어도 내가 아이가 힘겹게 맞추는 메마른 기준점이 되지 않겠노라고.

적어도 나 때문에 인정을 매 순간 목마르게 하지는 않겠노라고.

그냥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온 맘을 다해 응원만 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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