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와인 스놉(snob)이 되고 싶지는 않다. 스놉은 속물, 잘난 체하는 사람이란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2011)에서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관점에서 와인에 대한 과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지적 허영심을 떠는 것은 속물의 최적 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와인을 소재로 한 유명한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 나올 법한 오글거리고 화려한 형용사로 와인을 표현하면서 빈티지를 달달 외우는 암기력까지 더해진다면 와인의 정체성은 포도로 담근 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어 진다. 많이 마시면 두통에 시달리고 속은 뒤집히고, 다음날 숙취로 이불과 함께 뒤엉켜 고생을 해야 하는 그런 술 말이다.
하지만 고백한다. 나도 와인을 좋아한다. 좋아하게 됐다. 이유는 와인이 잔뜩 품은 달콤한 스토리 때문이다.
와인을 즐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와인에 녹아든 스토리를 알고 싶어 한다. 와인의 첫 향기만으로도 와인의 어제 그리고 오늘 어떤 스토리를 품고 있는지에 대해 이런저런 물음표를 붙인다. 인간이 먹는 그 어떤 것에 대해 이처럼 숨겨진 스토리를 알기 위해 무한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게 있을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마주하고 앉은 사람이 나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에 잔뜩 관심을 가지게끔 하는 그런 매력적인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와인에 대한 질투를 종종 느끼지만 어쩔 수 없이 와인의 뒷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운다. 와인의 향기에서 와인의 일궈온 시간의 과실을 읽어내기 위해 애를 쓴다.
어느 날 와인 애호가에게 왜 그렇게 와인을 찬미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의 답은 이랬다.
“누군가와 와인을 함께 마실 때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와인은 괴로움이나 아픔을 떨쳐내기 위함보다는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과 감정을 충분히 나누고 공감하기 위함입니다. 향기, 맛뿐만 아니라 서로의 감정에 행복하게 함께 취하는 것을 느낍니다.”
내가 와인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와인에 붙는 무수한 꾸밈의 말들 때문이다. 태양, 공기, 물, 기후, 지형 등이 적절하게 응축되어 만들어진 한 와인에 대해 다채로운 언어가 제대로 마법을 부리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물론 이것 때문에 자칫하면 와인 속물로 곧바로 전락해버릴 수 있다.)
낯간지러울 정도로 다양한 미사여구가 붙는 와인의 설명 문구를 보자면 여전히 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지만 와인의 향기와 맛에 대한 최적의 설명을 위해 그 방대한 언어 창고를 헤집었다는 것만으로도 와인의 매력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단 한 단어로 표현되는 그런 재미없는 사람이 아닌, 이런저런 수식어로 설명이 될 수 있는 그런 알록달록한 사람이고 싶다.
가벼움과 무거움, 와인을 표현하는 데 있어 이 보다 적합한 단어가 있을까? 시간의 진실을 품은 와인은 그 나름대로 가벼움과 무거움을 발산한다.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옳고 그름은 없다. 또한 이를 나누는 잣대도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관계의 가벼움과 무거움 속에서 우리는 매번 저울질을 하고 때론 그 사이를 정신없이 오고 간다. 무엇이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속물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 향기에, 그 스토리에 취할 준비는 되어있다. 시간의 묵직함을 느끼며 때론 가볍게, 때론 무겁게 그렇게 함께 취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