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 표정을 좋아한다.
눈앞에 있는 그 무언가를 위해 과장되고 화려한 가면을 쓸 수 있는 앞 표정보다는 뒷 표정을 애정 한다. 정제할 수 없는 진실함이 오롯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간을 과거로 돌릴수록 내가 바라본 누군가의 뒷모습은 크나큰 아쉬움, 때론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아니면 서글픔을 번지게 하고, 때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끼얹었다.
밤새도록 나와 함께 정신없이 놀 것 같던 친구들이 서서히 스며드는 어둠과 함께 집을 향해 차갑게 돌아서던 뒷모습, 바쁘게 사회생활을 하던 엄마가 텅 빈 집에 나를 놔두고 황급히 문 밖을 나서던 뒷모습, 내게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돌아서던 친구의 뒷모습, 앞으로 다시 보지 말자며 기약 없는 작별을 했던 그 사람의 뒷모습, 세월의 흔적을 오롯이 담은 우리 부모님의 뒷모습…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이상을 볼 수 있다.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내가 앞서 말한 부정적인 꾸밈의 말 이외에도 훨씬 다양한 표정을 읽어낼 수 있다.
사람의 얼굴 근육이 조합해낼 수 있는 표정은 1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수많은 얼굴 표정에서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난 때론 뒷 표정에서 읽어낼 때가 있다. 당연히 그 여운은 훨씬 깊다.
한 사람의 뒷 표정은 묵직한 공간을, 상상력을 남긴다. 눈, 코, 입과 함께 얽힌 산만한 몸짓에 내 시선은 곧잘 가볍게 흩어지지만, 한 사람의 뒷모습에서는 그 사람의 진정성을 무겁게 읽어낼 수 있다는 어쭙잖은 확신이 내게는 있다.
그래서 부담스러운 인연과 헤어질 때 나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지 않으려 애쓴다. 나를 원망하고 자책하는 그의 감정이 그대로 와서 박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게 나만의 착각이고 오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간 크고 작은 인연들을 통해 시선의 깊이를 얻었다고 어느 정도 확신한다. 뒷 표정은 아무리 애쓴다 해도 숨기고 포장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길을 지나가면서도 앞서 걸어가는 누군가의 뒷 표정을 통해 앞 표정을 종종 상상하곤 한다. 긴장, 피로, 흥분, 바쁨, 노여움, 설렘, 짜증, 무념무상 등 그런 다양한 감정들을 그들의 뒷모습에서 읽어내려 한다.
이렇듯 남들의 뒷 표정을 살피다 보니 내 뒷 표정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다. 그래서 나는 헤어짐의 인사 이후 상대방보다 먼저 돌아서기를 꺼리게 된다.
해야 할 말은 정작 하지 못한 채 하는 수 없이 돌아서야 할 때, 공허한 말만 두서없이 쏟아내고 난 뒤 피로함만 가득 안고 헤어질 때, 냉정한 거절의 말을 듣고서도 쿨한 척 뒤돌아설 때, 어떤 이를 향해 거침없는 비난의 말을 퍼붓고 난 뒤 애매한 죄책감을 가지고 발걸음을 뗄 때, 단 한순간도 공감하지 않았지만 내가 너를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한다는 거짓말을 하며 헤어질 때…이 모든 감정들을 들키고 싶지 않아 난 늘 상대방을 먼저 배웅하려 한다.
예전 우리 부모님이 내게 그랬듯이 나는 요즘 우리 아이의 뒷 표정을 읽으려 무진장 애를 쓴다. 내겐 그 어떤 뒷 표정보다 난해하고 어렵다.
차고 넘치는 나의 사랑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괜찮다지만 혼자 끙끙거리는 뭔가가 있는 것은 아닌지, 어른으로 커가는 지금이 이 시간이 너무 고단한 것은 아닌지…
세상에서 가장 주관적인 시선이라 그런지 아이의 뒷 표정을 해석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리고 덜컥 겁이 날 때도 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내 품을 떠나가는 긴 헤어짐을 해야 할 때 속울음을 삼긴 채 그 아이의 뒷모습을 의연하게 볼 수 있을지, 아니면 아이에게 내가 멋진 엄마로서의 뒷모습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누군가의 뒷 표정을 살피는 것을 좋아하지만, 정작 내 뒷 표정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이 없다. 그리고 솔직한 내 뒷 표정을 누군가 읽어내고 있을지 두렵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