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을 말하다_프롤로그

다섯 가지의 감각: 시, 청, 후, 미, 촉각

by yErA

편해졌다. 대단한 걸 써보겠다고 어깨에 힘을 잔뜩 주지도 않았고, 있어 보이는 화려한 단어를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지도 않았다. 욕심을 떨치고 나니 훨씬 마음이 여유로웠고, 그래서 그런지 하얀 백지를 까만 글자로 토닥토닥 채우는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세상에 어차피 글을 잘 쓰는 대가는 넘쳐나고, 아무리 내가 애써도 그들의 실력을 넘는 것은 가당치 않다. 적어도 이 생애에선 안될 일이다. 아무리 멋들어진 문장을 어쩌다 만들어내고 거기에 알록달록한 색깔을 덧입혀도 자칫하다간 모조품이 되기에 십상이다.


지금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지만 지식과 정보의 질적 측면에서 나는 그 분야에서는 여전히 팔로워다. 깊고 깊은 지식의 내공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풀어내는 전문가들이 내 주위에 쫙 깔렸다. 나는 이런 것들을 조금 이해할 뿐 최고의 전문성을 뽐내기는 역부족이다.


이런 것들을 깨닫는 순간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따듯한 감성 터치의 글도 냉철한 지적 터치의 글도 그 어느 것도 경쟁력이 없다는 걸 아는 순간, 자존감은 자연스레 하향 곡선을 그린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범과 인정의 늪에 빠지지 않기로 다짐했다. 자존감의 근육을 겨우 조금 키워놨는데 평범한 나를 끊임없이 자책하며 과한 인정 욕구를 발동시키는 요요 현상에는 빠지지 않겠노라고 애초부터 정신을 다잡았다.


신박한 소재도 압도할 만한 수려한 문장도 그렇다고 내 인생 자체가 굴곡이 험난해 삶의 소재가 다채로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과감히 인정하기로 했다. 난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무엇보다 글 쓰는 것을 즐길 줄 안다. 그러니 그것만 믿고 그냥 무작정 휘갈겨 보리라.


나는 내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고 나는 최선을 다해 답했다. 이전에는 철저하게 나를 몰아세우고 싶었다면 이번에는 조금 자유롭게 놓아주고 싶었다.


‘그래! 생각하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 네가 원하는 것 다 해.’


글을 쓰면 쓸수록 감정선이 따듯해지고 뜻하지 않은 위로를 받았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말이다. 늘 함께 하지만 끊임없이 그리운 사람, 멀리 있지만 늘 내 곁에서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 무엇을 하고 살까 문득 궁금한 사람… 이런저런 사람들이 내 주위에 도란도란 모여 앉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다섯 감각은 준비가 됐다. 자! 그럼 우리 얘기 한번 나눠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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