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을 잘 견디지 못한다. 주위의 무음은 내게는 일종의 트라우마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기는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적요한 공간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텔레비전이나 음악이나, 그 어떤 무의미한 소리라도 있어야 한다. 고요함 속에서 번지는 침묵의 두려움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시계를 과거로 돌려보면 나는 꼬마일 때 혼자 있는 시간이 유독 많았다. 아빠는 여느 아빠처럼 바깥 일로 바빴고, 엄마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바쁜 사회생활을 하셨다. 나와 4살 터울인 언니는 나와 학창 시절 시간표가 애매하게 엇갈렸다. 초등학교는 다정스럽게 학교를 함께 다녔지만, 내가 초등 고학년일 때 언니는 이미 고등학생으로 입시 세계에서 전투를 치르느라 바빴다. 그때 그 시절에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하루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냈던 터라 나는 깜깜한 밤에만 언니와의 수다 보따리를 풀 수 있었다. 외할머니와 이모의 따듯한 보살핌이 자주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집에서 혼자 가족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또래 친구들에 비해 길고 잦았다.
그럴 때면 나는 무거운 침묵을 온몸으로 느끼며 몹시 긴장하고 불편해했다. 그 어떤 소음이라도 만들기 위해 애를 썼고,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조금이나마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까 봐 언제든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의 독특한 발걸음 소리는 어김없이 구별해내는 능력을 가지게 됐다. 특히 엄마의 또각거리는 발걸음은 기똥차게 알아맞혔다. 그때 나는 적막의 두려움을 일시에 걷어냈다.
대학생이 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홀로서기를 했다. 어릴 적 공간의 침묵에 충분히 익숙해진 줄 알았지만 오히려 정반대였다. 혼자라는 보호 기제가 강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고요함 가운데 들리는 낯선 소리에 더욱 예민해졌다. 가족들과 함께 살 때와는 달리 침묵은 얼마든지 지속될 수 있었기에 나는 침묵을 단절시키기 위한 산만한 소음 만들기에 더욱더 집착했다. 그러다 보니 잠잘 때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켜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
익숙하지 않은 적막이 갑자기 느껴질 때면 여전히 위축된다. 침묵의 무거움보다는 산만한 잡음이 내는 가벼움이 훨씬 좋다. 글을 쓰는 지금도 알지 못하는 음악이 무작정 흘러나와 내 공간 곳곳을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