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각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육체적 노동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를 조금 달리 표현하면 아이와 살을 부대끼는 스킨십이 시작되는 것이다. 조금 미화하면 피부로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 시작되는 셈이다.
아이들은 부모와 따듯한 스킨십을 통해 온 몸 구석구석 사랑을 전달받겠지만, 스킨십은 절대 일방향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아이가 크면 클수록 아이와의 포옹으로 사랑 샤워를 하는 쪽은 부모가 아닐까 한다.
엄마는 아이를 가지는 순간부터 아이와의 포옹을 시작한다. 아이와의 만남을 가슴 졸이며 꿈꾸고 기다리는 열 달 동안 엄마는 자기의 동그란 배를 수시로 안는다. 부디 건강하게 자라서 열 달 뒤에 건강하게 만나자고.
나도 그렇게 해서 사랑스러운 아이를 만났고 15년째 사랑하고 있다. 아기에서 어린이로, 그리고 소년으로 겉모습은 변해가지만, 나는 여전히 아들을 자주 안아준다. 물론 아들의 반응은 달라지고 포옹의 간격도 점점 길어지고 있지만 말이다. 앞으로는 더 티 나게 달라질 것이라는 각오도 이미 하고 있다.
잦은 포옹을 통해 사랑을 충전했던 아이는 머지않아 낯간지러운 포옹을 더 어색해할 나이가 될 테고 그 이후에는 홀로서기를 하며 다른 누군가와의 포옹을 더욱 꿈꿀 테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아이를 밀착해서 돌봤던 육아 모드에서 그의 성장을 위한 기다림의 모드로 태세를 변환했고, 앞으로는 응원의 모드로 한참 물러설 각오를 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짐하는 게 있다. 아이가 건장한 성인이 됐을 때 철저하게 선을 지키는 엄마가 되겠노라고 말이다. 물리적, 심리적으로 적절한 선을 지키는 지혜를 진작에 터득해 그 누구보다도 쿨한 엄마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더라도 따듯한 포옹은 빼놓지 않으려 한다. 온 마음을 통해 너를 사랑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걸 가끔 전달하는 정도는 허락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