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걸어 잠갔다. 결혼하고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방문 밖 어두운 거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방문을 열어젖힐 것 같은 긴장감에 바짝 얼어붙은 나는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어둠이 물러가고 밝음이 찾아왔지만, 내 모든 신경은 어둠 속 민감한 상태 그대로였다. 그 목소리가 들리면 나는 다시 꼼짝없이 얼어붙을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미움과 원망에 휩싸일 것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가지는 위력을 처음 실감했다. 차갑게 변해버린 한 사람의 목소리는 평범한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허물어버리고, 그간 어디에 숨어있었는지도 모를 법한 두려움과 미움의 감정을 쉽게 꺼내버렸다.
나는 착한 단짝을 만난 덕분에 결혼 생활 대부분을 단짝의 부모님과 시간과 공간을 함께 나눴다. 사랑이 차고 넘치는 나의 단짝은 그의 부모님을 그대로 빼닮았다. 부모님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책 한 권 분량이지만 이 한 줄 만으로도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할 듯하다. 나는 부모님을 쏙 닮은 나의 단짝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내 단짝은 그의 부모님에겐 모든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나는 이 집에 나중에 합류한 사람이다. 나는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다. 그들과 시공간을 공유하면서 나는 그들의 착함에 물들기는커녕 착해지는 것을 진작에 포기했다.
시부모와의 생활기는 그냥 가볍게 씹어댈 안주거리가 절대 아니다. 사랑, 갈등, 미움, 이해, 체념, 질투, 애틋함, 측은함...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어떤 단어를 내게 들이댄다 하더라도 나는 시부모님과 함께 한 그 시간들을 설명할 자신이 있다. 그만큼 단짝 부모님과의 생활은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분들은 바쁜 사회생활을 하는 내게 넓디넓은 포용과 일방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래서 난 한 아이의 엄마 노릇도 할 수 있었다. 특히 아버지의 도움이 더욱 컸다. 아들도 아들이지만 그 아들의 아들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한없는 사랑을 쏟아부으셨다. 이 또한 설명하자면 책 한 권 분량이다. 여하튼 끝이 없다고 확신이 들 만큼 아버지는 아들의 아들에 대해 일방적인 사랑을 내리부으셨다. 환하게 웃을 때 반달이 되는 아버지의 눈은 매 순간 하트 모양으로 변해있었다.
그런 따듯한 아버지가 한순간에 너무 차갑게 변해버렸다. 연로한 아버지에게 달갑지 않은 치매가 찾아왔고 강인하던 아버지도 이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얕은 치매였지만, 고약한 방법으로 찾아와 우리를 괴롭혔다. 아버지가 한없이 의지하던 아들에 대한 감정이 갑자기 적대감으로, 강박증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잠재의식에 있으셨던 건지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버리려 한다고, 그럴 거면 본인이 먼저 집을 나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셨고, 그 과정에서 나의 단짝은 최대한 의연한 척하려 했지만 아버지와의 감정의 연결고리가 끊어져버려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어쩔 수 없이 힘들어했다.
갑자기 단짝 이름을 차갑게 부르며 원망을 쏟아낸 아버지의 단호한 목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머리끝까지 신경이 쭈뼛거렸다. 그럴 때면 나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그의 배우자인 어머니한테도 나의 시공간은 물론이고 내가 사랑하는 단짝의 시공간에서 제발 물러서 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우리는 모두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이니까 각자 생존은 각자가 책임지자고. 서로의 선은 넘지 말아 달라고.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그런 거리를 허용해달라고.
아버지는 여전히 치매를 겪고 계시지만 더 이상 나의 단짝을 괴롭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훨씬 더 연로해지셔서 오히려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 자체가 크게 줄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아버지의 차가운 그 목소리를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나는 단 한순간도 참을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쉽게 두려움과 미움이라는 감정을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 차갑게 돌아설 작정을 어렵지 않게 했다.
나는 이 집에 나중에 합류한 사람이다. 참을성도 없고 충분히 이기적인 그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