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다_식탐 없는 미식가

미각

by yErA

먹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은 궁금한 것도 많다는 데 그렇다면 나는 세상 궁금한 게 없는 사람이다.


소문난 맛집 탐방을 위해 발품을 팔거나, 그 집 문 앞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는 대단한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은 나의 자발적인 결정으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 성격도 까탈스럽다 비난한다 하더라도 나는 여기에 딱히 반박할 수 없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예부터 밥상머리에서 깨작거리는 것은 복 떨어진다고 야단맞을 일이었지만, 그렇다면 나는 어릴 때 이미 엄청난 복을 꾹꾹 눌러 축적했다고 자신할뿐더러 적어도 내 앞에서 차려진 음식 앞에서 티 나게 불경한 태도를 보이진 않는다.


그냥 식탐이 없을 뿐이다. 어떤 음식을 먹고 속에서 우러나오는 찬사를 보내본 적은 거의 없고, 그 깊은 맛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음식 사진을 찍는 일 역시 매우 드물다. 내게 미각은 제일 덜 발달된 오감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이런 내게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어치우는 먹는 방송(먹방)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한계를 실험하는 극단의 곡예를 보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맛있는 음식을 대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대리만족을 경험한다지만, 나는 그렇게 많은 양을 한꺼번에 먹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에 겹다. 잘 먹고, 또 먹고, 많이 먹는 사람들에 대해 찬사가 쏟아지는 시대에서 나는 외톨이나 다름없다.


식탐이 없는 내가 요리에 특별한 관심이 없다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무언가를 먹기 위해 재료를 고르고, 씻어 다듬고, 뜨거운 열 앞에서 시간을 재면서 재료를 투하하고, 각종 양념을 최상의 적정 비율로 섞어 최적의 맛을 내기 위해 애쓰는 그 과정이 내겐 자신이 없을뿐더러 재미도 없다. 누구를 위해 자신의 열정과 노력을 요리라는 완성작을 통해 전달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백번 인정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것 말고 다른 것을 선택하겠다고 말하리라.


제대로 정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거창한 요리를 누군가를 위해 창조하는 것보다는 잘 먹고 난 그릇을 깨끗하게, 뽀독뽀독 닦는 일이 훨씬 재미있다. 그리고 그 일을 훨씬 잘한다.


그렇다고 나를 너무 비난하진 마시라. 나는 먹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진 않지만,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해 먹는 것은 즐긴다. 멋진 요리를 풍부한 미각을 총동원해 즐기지는 않지만 함께 하는 분위기와 서로 오고 가는 말은 충분히 즐긴다. 좋은 사람과 좋은 분위기에 놓인 음식에 대한 감사함은 충분히 맛볼 수 있다. 다양한 맛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나도 충분히 미식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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