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출발하지 않으려 해

미완의 여유

by yErA

새해를 맞이하고 한동안 시간은 매우 더디고 묵직하게 흐른다.


영속적인 시간 속에서 굳이 작은 시작을 알리며 크고 작은 다짐, 목표와 계획을 꾹꾹 눌러 담은 새해의 몇 날을 흘려보내고 나면 오히려 마음은 홀가분해진다.


그럴듯한 새해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중압감이 사라진 데다, 연초 호기롭게 세운 그럴듯한 목표가 별일 없으면 내년 목표로 재탕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연초라는 이유 만으로 과한 에너지를 쏟지 않기로 한다. 하루하루를 덤덤하게 쌓아 올리고, 그러다 갑자기 솟구친 의욕에 의외의 과감한 목표를 세우고 그러면서 때론 성취의 기쁨을, 때론 과욕의 아픔을, 때론 저항할 수 없는 게으름을 한탄하는 게 훨씬 인간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한 살을 더 먹었다는 이유로 내 모습이 새롭게 거듭날 것이라는 기대도 높지 않다.

인간관계에 더없이 어설프고 옹졸하고, 남의 시선을 끝없이 따라다니고, 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외치면서 계획한 경로를 이탈하면 애써 변명거리를 찾으며 적당히 타협하고, 남들처럼 든든한 조력자가 없다고 끊임없이 불평하고, 의연한 척하면서 주체할 수 없는 시기와 질투를 거두지 못하고, 용기가 아니라 책임감이라며 현실에 안주하는 나, 새해라고 달라질까? 다짐한다고 달라질 문제는 아니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물론 이런 내가 문제 있다며 가끔씩 날 보수하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어제와 같은 그저 그런 오늘이라는 것은 아니다.

빡빡한 새해 목표를 이루려는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여느 때와 달리 설렘과 기대치는 높다.

어슴푸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던 시간, 갑자기 머리 위로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켜졌다.

날 위한 조명도 아니지만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듯 잠시 들떴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문득 궁금해진다. 언제, 어디서 선명한 빛이 날 반짝이게 할지 모를 일 아닌가.


새해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불확실성 속에서 신나는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보기로 한다.

치밀하게 짜놓은 각본보다는 미완을 즐기기로 한다.

계획과 준비는 그때 가서 해도 되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2년 일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