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이 설렌다는 건 옛말이다. 이제는 설렘보다 별일 없기를 기도한다. 다행히 첫 만남에서 별 일은 없었다.
계획했던 대로 교사 소개를 먼저 했다. 보통 교사 소개는 짧게 하는 편이다. 많이 오픈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비주의가 너무 과했나? 올해 아이들은 내 소개 후 별다른 질문이 없다. 첫 만남이라 쑥스러워서 그런가 보다..라고 넘기기엔 작년까지는 꽤 많은 질문이 들어왔었다.
"더 질문 없어요? 시간 얼마 없는데."
누구에게 2분은 정말 짧은 시간이지만 아무 질문이 없는 교사에겐 꽤 긴 시간이다.
그렇게 교사 소개를 마치고 학급 1년 흐름을 브리핑했다.
"올해 우리 학교는 연구학교로 선정 돼서 관련 프로젝트들을 진행할 거예요."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올해 '진로'를 주제로 연구학교에 선정 됐다. 연구학교는 쉽게 말해 다른 학교보다 먼저 이것저것 실험해 보는 거다. 가장 큰 실험으로 중학교 '자유 학기제'를 초등학교 수준에 맞춰 적용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아이들은 흥미로워한다.
사실 연구학교보다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건 학급 화폐 프로젝트다. 올해로 학급 화폐 5년 차다. 그동안 경험을 토대로 1년 계획을 나름 치밀하게 짜 놨다. 그래서 학급 화폐를 소개할 때 괜히 내가 설렜다.
"연구학교의 진로와 선생님이 추구하는 진로는 조금 다릅니다. 선생님이 학급 화폐로 말하고자 하는 진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있어요. 어떤 사회인지 이해하고 그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한다면 훨씬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어요."
사실 준비한 멘트는 아니었는데 말이 막 나왔다.
"만일 여러분이 조선 시대에 사는 양반입니다. 어떻게 사는 게 좋습니까?"
"공부해요." "놀아요."
"그렇죠. 양반은 속 편히 공부하거나 청소는 노비 시키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조선 시대 노비로 태어났어요. 그런데 양반이 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열심히 노력해요." "포기해요."
"양반이 되고 싶은 조선시대 노비의 전략은 2가지입니다. 양반 욕심을 버리거나, 칼을 들어 혁명을 일으키거나. 왜냐하면 조선 시대는 신분 사회이기 때문이죠."
몇몇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처럼 어떤 사회를 사는지 이해하는 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2023년 대한민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선시대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안 되겠죠."
음. 꽤 잘 설명한 거 같다.
잘 이해했나 눈빛들을 살폈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빛들이 밝지만은 않다. 중학교 자유 학기제 얘기 할 때가 더 빛났던 거 같은 건 기분 탓이리라.
"학급 화폐 관련 이야기는 내일 자세히 이어가겠습니다."
내일은 국가 이름, 화폐 단위, 직업 정하기 등 본격적인 학급 화폐 도입 날이다. 내일 질리게 얘기할 텐데 첫날 길게 얘기해서는 안 된다.
2교시 땐 미션을 주고 친구들 사인받기 활동을 했다. 낯선 우리 반 친구들과 조금이라도 말을 섞는 시간이었다. 3~4교시 때는 준비물, 안내문 확인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꽉 찬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