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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이 Jul 10. 2023

'납득할만한 디자인' 그게 뭔데

진짜 빙의라도 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구만 


이번에 출판사 로고와 명함을 새로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 디자인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책장에 책을 꽂아놨을 때도 우리 로고를 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라는 게 로고를 수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디자인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마주할 때는 ‘도통 좋은 기준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다. 고민하고 공들여서 만든 것보다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디자인했던 것들이 내부적으로나 대중에게 좋은 반응을 끌어낸 경험도 여전히 디자인이 어렵다고 느끼게 하는 원인이 된다. (하여튼, 이번 로고 수정도 최소 5개 이상의 디자인을 보여드리고 나서야 '납득할 만한 디자인'으로 확정할 수 있었다.) 






막힌다고 느낄 땐, 이것저것 만들어 보고 또 여러 레퍼런스들을 들여다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가만히 있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누군가의 디자인을 보면서는 ‘왜 이렇게 디자인하기로 선택했을까?’ ‘클라이언트의 요청이었을까?’ ‘회사의 결정이었을까?’ ‘어떤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이렇게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한 걸까?’ 등의 생각을 한다. 내가 그 디자이너에게 빙의되거나 직접 인터뷰를 하는 게 아니니, 어디까지나 추측하고 넘어갈 뿐이겠지만. 그래서 나는 늘 그들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가능하다면 머릿속에 들어갔다 올 수 있으면 좋겠다. 


디자인 작업을 할 때는 산책을 하면서도 온통 작업 중인 것들을 떠올린다. 로고를 만드는 동안에는 동네에서 마주하는 온갖 텍스트와 도형을 관찰한다. 도움이 되는 것을 선별해서 본다기보다 그냥 다 본다. '정치적 성격의 현수막에는 이런 서체를 사용하는구나', '요즘 간판에는 이런 컬러와 도형이 많이 쓰는구나', '공기관에서 걸어둔 현수막엔 온갖 트렌드 서체가 다 들어있네' 등 이것저것 보고 생각하다 보면 운 좋게 생각이 열리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얻은 힌트로 다시 이것저것 그려보고 적어보고 한다. 체감하기로는 무한 반복으로. 



평범하게 생긴 것은 평범한 대로, 독특하게 생긴 것은 또 독특한 대로 눈에 담아본다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는데, 요즘은 그중에서도 두 번째 책의 표지를 디자인하는 걸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며칠 전, 제목을 들을 때부터 '이런 느낌이면 좋겠다' 생각하고 디자인한 시안을 대표님에게 공유했더니 "이 이미지와 제목, 그리고 책 내용의 상관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야?", "창작하려고 하지 말고 좋은 레퍼런스들을 더 찾아서 어떤 콘셉트로 만들고 싶은지 정리해 봐"라는 피드백이 있었다. 이번처럼 생각했던 것이 통과되지 않으면 바로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미지적인 디자인보다도 텍스트적인 디자인, 즉 표지에 넣으면 좋을 내용들을 더 찾아보고 있다. 원고를 열어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본다. 내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을 발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도 와닿을 만한 문장이 뭘까 고민하며 몇 개 정도 골라본다. 그러고는 문장을 펼쳐두고 어떤 서체로 타이틀을 적으면 좋을지, 어떤 컬러로 하면 가장 어울릴지, 하나라도 괜찮다 싶은 구도가 잡히면 다양한 다른 것들을 시도해 본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고민과 생각들이 많아지면, 되려 그 틈을 비집고 또 다른 생각이 들어온다. '뭘 더 배워야 할까?', '무엇부터 배워서 채워야 할까?' 하고. 


오랜 기간 '나'에 대해 고민하고 나를 알아가는 데 시간과 마음을 썼다. 그러면서 내 생각 프로세스 자체가 '나' 중심이 된 것을 느낀다. 일상을 살아갈 땐 탁월하지만, 이러한 사고 체계가 디자인할 때 쉽지 않음을 느낀다. 사람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글은 무엇일지,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비슷한 고민이 계속 이어진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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