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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정 Dec 02. 2020

9. 프리랜서를 하며 느낀 점들 [완]

『프리랜서로 돌아온 이직요정』

* 본 글은 프로그래밍 개발을 주 업무로 하는 프리랜서 개발자에 대한 내용입니다. 



'언젠가 나도 프리랜서를 해야지'라는 생각은, 내가 아직 신입 티를 벗지 못했던, 진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만났던 프리랜서의 영향이 참 컸던 것 같다.


해외에서 한 회사에 정규 직원으로 들어가 대표의 눈치를 보며 제시간에 퇴근도 못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웹디자인을 담당할 프리랜서 직원이 들어왔다. 경력이 10년쯤 된다고 했다. 잡무가 많아 모두가 정작 본래 업무는 손도 못 대고 있을 때에도 프리랜서는 도도하게 딱 자기 일만 했다. 대표는 그런 프리랜서에게 찍소리도 못했고, 프리랜서가 존댓말은 썼지만, 대표는 거의 아랫사람과 다름없어 보였다.

여기를 그만두거나 짤리면 당장 갈 곳이 없어 불안했던 나와는 달리, 그 프리랜서는 회사일 말고도 외주 계약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는 듯했기에 아쉬울 게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일거리는 한국에서 들어왔는데, 이렇게 해외에서 여행하는 기분을 내며 일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아마 이때부터 였을 것이다. 내가 프리랜서에 대한 환상과 일종의 편견들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


그리고 지금의 나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긴 하지만, 내가 원했던 모습의 프리랜서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아마 아직 그때의 그 프리랜서만큼의 경력도, 실력도 없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지금의 포지션도 꽤 마음에 든다.


사실 프리랜서는 사수가 있는 경우도 거의 없고, 본인이 맡은 역할을 어떻게든 수행해야 하는 기대를 받는 자리이다 보니 처음 프리랜서를 할 때는 한껏 위축되어 있었다. 처음 개발(SI) 프로젝트에 프리랜서로 투입됐을 때는 막연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여기서는 나를 왜 뽑은 걸까 하는.

근데 막상 또 일이 닥치면 하게 되는 게 사람인지라, 나도 일이 주어지니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고, 의외로 내 역할을 잘 소화했던 것 같다. 


언젠가 프로젝트 하나를 마무리하고 함께 일했던 분들과의 회식자리에서, 나를 뽑으며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조용히 자꾸 뭔가를 해내서 놀라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칭찬으로 들려 기분이 매우 좋았고, 덕분에 프리랜서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말 한마디 덕분에 나는 지금도 가벼운 마음으로, 새롭게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을 하고 있다.


면접을 보러 다니다 보면, "직장을 자주 바꿨네요?"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중 두 개의 회사는 망한 이야기며, 아직까지도 월급을 못 받은 곳도 있으며, 어떤 회사는 직무를 멋대로 바꿨고, 어디는 야근을 시키다 못해 텐트도 쳐줬다는 등의 이야기를 변명처럼 구구절절 늘여놓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간단하게 말한다. "그래서 프리랜서를 시작했습니다"라고.


프리랜서를 하면서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운영(SM)으로 첫 프리랜서를 하다가 그만두고 개발(SI) 프리랜서로의 첫걸음을 내디뎠을 때의 기억은 그다지 좋지 않다. 

들으면 누구나 아는 큰 IT 기업에 초급 개발 프리랜서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면접 때부터 소통이 잘 안됐었다. 나는 당시 방송대 컴퓨터학과 졸업 시험을 앞두고 있었고, 이 시험이 끝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시험 이후에 예정된 여행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회사의 어떤 규정상 그 주 내로 인원이 들어와야 해서, 일단 계약을 먼저 하고 시험 전까지는 편의를 봐주겠다고 했다. 이게 내가 받아들였던 내용이다. 하지만 담당자는 자신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고, 여행 가는 것에 대한 편의를 봐주겠다는 뜻이었다며 월요일 하루 휴가를 주는 것이 그것이라고 했다. 여기까지였으면 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맡은 부분을 개발을 하고 나서 잘 모르는 부분(리액트-자바스크립트 라이브러리-였다. 면접 시에도 리액트는 잘 모른다고 분명히 말했다)을 고급 프리랜서에게 질문을 했고, 덕분에 금방 해결했다. 근데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담당자가 나중에 나를 불러서는, 나는 한 것도 없고 바쁜 사람한테 내 일을 다 시켰다는 식으로 말을 하기에 진짜 너무 억울했다. 98%를 나 혼자 해결했고, 2%(그렇지만 결정적인 부분)에 대해 물어봤던 것 뿐이다.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면 더 비싼 돈 주고 중급 이상으로 뽑지, 내가 리액트는 안 해봤다고도 말했는데도 굳이 날 뽑아 놓고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식으로 말해서 상처를 주는 건지. 그러면서 자른다고 협박까지 하길래 어이가 없어서 그냥 자르라고 하고 나왔다. 


이 경험으로 인해 프리랜서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졌다. 그래서 한동안은 졸업 준비에만 몰두하다가, 정규직 자리를 찾아보던 와중에 다시 한번 프리랜서를 할 기회가 왔다. 안 좋았던 이전 기억 때문인지 면접 때 정말 그렇게 소심했던 적이 없었다. 물어보는 것마다, 해본 적은 있는데 다 그렇게는 잘 못한다고만 했다. 그럼에도 괜찮다며 나를 뽑는다. 사람 구하기 힘들긴 한가보다 싶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프리랜서를 하게 되었고, 이후부터는 너무 좋았다. 프로젝트마다 계속 좋은 분들만 만나고 있다. 잘 모르는 일도 다들 괜찮다고 다독여주시니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작은 성과에도 치켜세워 주시니 더 잘하게 된 것 같다. 그때 쓸 사람이 없어서 나를 뽑은 거라고 해도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또 다른 대기업으로 프로젝트를 갔었는데, 거기는 어찌나 잘해주시던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그리고 곧 나갈) 프리랜서가 좋아하는 양꼬치(!)를 굳이 회식 메뉴로 정해서 데리고 가주셨다. 텀블러도 챙겨주시고, 회사 제품 피규어도 주시고, 직접 구워온 마들렌(!!)까지. 내가 나가는 날 즈음에는 부서 전체 메일로 프로젝트 마무리를 독려하며 나를 언급해 주시기도 했다. 어디나 사람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의 자존감을 깎아먹는 사람이 회사 내에 있다면 빨리 떠나시길. 세상엔 좋은 사람도 참 많다. 


지금도 나는 나를 믿어주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하니 진짜 잘하는 줄 알고 더 열심히 하면서 말이다.


『프리랜서로 돌아온 이직요정』 여기에서 마칩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버티고 있는 모든 직장인들을 응원하며, 당신의 성공적인 이직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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