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요정의 대만 생활기』
한국에서 집을 구할 때 부동산을 직접 방문하거나 앱을 사용하는 것처럼, 대만도 집 구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나는 대만에 가기 전부터 집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앱을 다운로드하여 살펴봤다. 대만에서 집을 구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플랫폼은 【591房屋交易】이다. 월세뿐 아니라 매매 거래도 올라오기 때문에 조건 설정을 잘해야 한다(참고로 월세를 찾으려면 租屋를 선택하면 된다). 매물은 집주인이 직접 올리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부동산 대리인이 올리는 경우다. 그래서 미끼 매물도 종종 있기는 하지만, 가장 많은 매물이 올라오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감안할만하다. 중국어로만 서비스가 된다는 점은 좀 아쉽긴 하다.
* 그래서 중국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들은 Facebook의 관련 여러 커뮤니티에서 방을 구하는 경우도 많다(Taiwan Rental 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면 나온다). 근데 영어로 된 페이지도 한두 개가 아니라, 여러 페이지에 가입해서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기도 하다. 하나하나 들여다보기 귀찮다 싶으면 내가 원하는 위치와 조건을 정리해서 올리면 연락이 오기도 한다.
아무튼 나의 경우는 앱을 활용해서 원하는 지역 몇 개를 찍어놓고 틈틈이 올라오는 집들을 계속 확인했다. 우선 사진상으로 마음에 드는 집을 즐겨찾기 해놓고, 하나씩 들어가 정확한 위치나 옵션 등을 찬찬히 살펴보는 식이었다. 몇 개 보다 보니 내가 원하는 집의 조건들이 하나씩 잡혀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근처
풀옵션(세탁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
월세 4만 원 전후
방 1개 이상(원룸 X)
천연가스 有
대만은 집에서 요리를 잘 안 해 먹는다는 문화라 부엌이 없는 집도 많고, 가스레인지 대신 인덕션만 설치되어 있는 집도 많다. 나는 주로 집밥을 해 먹는 스타일이라 부엌은 무조건 있어야 하고, 인덕션은 전기비가 많이 나온다고 해서 천연가스가 연결되어 있는 집이 조건 중 하나였다. 가스를 신청하면 LPG 가스통을 가져다가 연결해 준다고도 하는데, 굳이 귀찮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그렇게 월세는 조금씩 올라간다). 조건이 하나 둘 늘어감에 따라 즐겨찾기 해놓은 집을 삭제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러다 마침내 모든 조건에 맞는 집을 발견했다. 등록자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약속 일정을 잡았다.
약속 당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보니 부동산이었다. 등록자는 부동산 중개인이었고, 내가 보여달라고 한 집을 보여주기 전에 같은 가격의 다른 집을 먼저 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지금 그 집을 보러 가는 사람이 있어서 가는 길에 같이 가자면서 말이다. 나는 흔쾌히 수락하고 중개인을 쫄래쫄래 따라갔다.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깔끔한 건물 앞에 도착하니 인상 좋은 집주인이 나와 있었고, 집주인을 따라다니면서 본격적인 집 구경을 했다. 별생각 없이 따라간 건데 깔끔한 외관과 아늑한 실내에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가구랄 게 딱히 없어서 좁은 집임에도 쾌적해 보이는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커다란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도 꽤 마음에 들었다. 대충 집을 둘러보고 지하에 있는 주차장과 쓰레기 처리장까지 확인 후, 원래 내가 보기로 했던 집으로 향했다.
'잘못하면 길 잃겠는데' 싶을 만큼의 대단지 아파트였다. 지은 지 20년인가 30년 됐다는 촌스러운 핑크 혹은 빛바랜 하늘색으로 포인트 색을 입힌 아파트는 외관부터 방금 보고 온 집과 차이가 너무 났다. 실내는 비교적 깔끔하긴 했는데 확실히 오래된 티가 곳곳에서 묻어났다. 특히 화장실은 90년대 배경의 드라마에서나 볼 것 같은 '헉'스러운 모양새였다. 게다가 쓰레기장은 따로 없고, 매주 쓰레기차 오는 시간에 나가서 버리면 된다고 하는데 이것도 좀 충격이었다. 들어보니 대만은 이렇게 쓰레기장이 없는 건물이 많은데, 그런 곳은 쓰레기차가 지나가는 요일과 시간에 맞춰 쓰레기를 들고나가 버려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날이 제각각인 곳도 있다고 한다. 이런 시스템을 아직까지도 고수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바퀴벌레 때문인 것 같은데,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
다른 집들도 더 둘러보면 좋았겠지만 나에겐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이날 본 두 집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둘 다 월세도 똑같고 내가 원하던 다른 조건들도 충족한다. 다만 고민 되게 만드는 차이점이 있다면, 첫 번째 집은 학교까지 걸어서 20분 거리에 방은 1.5개, 두 번째 집은 학교까지 걸어서 5분 거리에 방이 3개라는 것이었다. 가성비를 따지자면 두 번째 집을 선택하는 게 맞지만, 사실 이미 마음은 첫 번째 집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나를 합리화시키기 시작했다.
'20분은 아침저녁으로 운동삼아 걷기에 딱 적당한 시간이고, 방은 굳이 3개씩이나 있을 필요가 있을까? 청소하기만 힘들지!'
그렇게 자기 합리화 끝에 최종적으로 첫 번째 집을 선택했다. 주변 환경이나 인프라도 첫 번째 집이 월등히 좋기도 했고(지하철역까지 2분 거리에, 주변에 대형 쇼핑몰이 무려 4개였다!) 바퀴벌레도 덜 나올 것 같다는 점도 선택에 한몫했다. 아, 그리고 바로 옆 건물 1층에 주니어가 좋아하는 레스토랑 체인점이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인상 좋았던 집주인과 계약을 하기 전에 이런저런 사항들을 조율했다. 집에 가구들이 너무 없다 보니 혹시 지원 가능 여부를 물어봤더니, 쓰던 거라도 괜찮다면 소파와 TV는 놔줄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주차장은 쓸 일이 없다고 하니 관리비도 약간 깎을 수 있었다. 부동산 중개인이 중간에서 소통을 도와주면서, 집에 하자가 있는 부분들을 미리 사진을 찍어 계약서에 첨부해 주었다. 며칠에 걸친 조율이 끝나고, 최종적으로 집주인과 부동산에서 만나 계약서를 작성하며 보증금과 부동산 중개비를 건넸다. 일반적으로 보증금은 두 달 치 월세 금액과 같고, 부동산 중개비는 계약한 월세(관리비 미포함)의 1/2이다. 내가 구한 집은 월세 4만 원에 관리비가 3500원인 집이어서, 보증금으로는 8만 원을, 부동산에는 2만 원을 지불했다. 집주인과 직접 소통하고 계약을 하면 중개비는 아낄 수 있지만, 추후에 계약상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혼자 처리하기엔 힘들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 보니 너무 급하게 집을 구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월세도 좀 더 깎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두 번째는 더 잘할 수 있겠지! 했는데, 두 번째 없이 이 집에서 계약 2년을 꽉 채우고도 몇 달을 더 살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큰 불편함 없이 그럭저럭 살기 무난하니 쭉 살지 않았나 싶다. 나중에 또 집을 구하게 된다면 계약은 1년 단위로 하고, 월세는 최대한 깎고, 집에 보수가 필요한 곳은 꼭 처음에 요구해야지!
그리고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은, 아침저녁으로 운동하기 좋을 거라고 생각한 20분은 체감 온도 40도를 넘나드는 대만의 여름엔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무료 습식 사우나를 하는 거라고 나름 위로를 해보려고 했지만, 사우나를 하고 바로 샤워를 하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는 건 정말 별로였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다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이겠지만.
아무튼 이직요정은 이렇게 대만에서 살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시작했다.
이직요정의 대만 생활기(라고 쓰고 생존기라 읽는),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