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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초 Feb 05. 2024

카페 의자가 불편한 이유

겨울방학인데 주말에도 아이들과 집에만 있어 미안하던 터에, 게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잭슨 나인즈'로 향했다.  

 남편에겐 자유시간을 주고 아이 셋을 혼자 데리고 키즈카페에 갔다가 샤브샤브를 먹고 서점에 들러 책을 산 뒤, 커피숍에 잠시 들렀다.

 " 라떼 테이크 아웃이요 "

주문하다 큰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 너희들도 아이스티 마실래?"

 " 아냐 괜찮아, 오늘 엄마 돈 많이 썼잖아."

슬쩍 메뉴판을 보니, 큰아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티 한 잔이 5천 원. 안 먹는다니 다행이다.

 그때 6살 막내가

" 엄마, 나 목이 아파. 목말라."

" 그럼 서희만 아이스티?"

" 우리도 마실래!"

  결국 음료 하나씩 시키고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았다.


 남편 혼자 돈 벌 땐, 커피도 2천 원 미만으로 사 먹으려고 했는데, 이젠 애들도 한 잔씩 사줄 수 있어서 뿌듯하다. 이러려고 회사에서 눈치 보며 근무하는 거지, 별 거 있나.

 아이스티 한 잔씩 마시며 새 책을 읽는 모습에, 나도 한 권 살 걸 그랬나, 알라딘에서 할인쿠폰 받으면 더 싸게 살 수 있는데, 집에 안 읽은 책도 많은데 굳이 비싸게.. 아이들 책값만 해도 5만 원은 되는데 내 책까지는 무리라는 생각에 안산게 살짝 후회가 됐다.


 조용한 카페를 둘러보니, 카공족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카페 음악 선곡이 예술이다. 무슨 곡인지 처음 들어보는 잔잔한 재즈풍의 곡은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이 뿅 갈 만한 은은한 취향이 귀를 간지럽힌다. 이렇게 분위기 좋은 작은 카페에서 향 좋은 커피 마시며 부드러운 음악 들으면 공부할 맛이 나겠다, 생각하는 사이,


 의자가... 너무 딱딱했다.


아...! 카페 사장님들이 손님 회전율을 고려해서 제일 불편한 의자를 고른다더니, 설마 했는데. 감성 충만하고 자리로 음료를 가져다주는 친절한 사장님이 운영하는 작은 카페에 유일하게 딱딱한 건 의자뿐이었다.



오래 쉬다 복직했더니 감사함이 북받쳐 오르고 열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하늘을 찔렀다. 한 명 한 명 민원인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업무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화'만' 친절하게 받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상냥함 뿐이었다. 조용한 사무실에 우렁찬 내 목소리가 울려 퍼질 거란 사실도 모른 채, 전화를 끊자마자 내 옆의 대리가 웃으며 하는 말.


 "과장님, 전화를 너무 친절하게 받으세요"

칭찬인 줄 알았는데 이어지는 한 마디,

" 그렇게 받으면 일 못해요."

 "제가 상대방이라도 불친절하면 기분 나쁠 것 같아서요, 최대한 친절하게 받으려고 하는데..."

 "우리가 친절하게 해 주면, 더 이용하려고 들어요. 최대한 짧게 받으시고 끊으셔야 해요. J 주임이 전화받는 거 잘 보고 따라하세요"


 잠시 후 팀장도 한 소리했다.

"잡초과장, 전화를 너무 오래 해. 전화 그렇게 받으면 일을 할 시간이 없잖아. 발 동동 구르며 일하는데 결재 올라오는 건 별게 없어. 하는 일이 없잖아. 전화는 짧게 받고 일을 하라고!"

아... 상냥함이 내 무기인 줄 알았는데, 독이 될 줄은.



 그러던 어느날, 민원인 여성 두 분, 남성 두 분이 함께 찾아와서 해지 후, 재계약을 해달라고 했다. 규정상 그렇게는 안된다고 했더니, 주변에 그렇게 한 사람을 본 것 같은데 왜 안되냐고, 남성분이 언성을 높였다. 친절하게 안된다고 재차 설명을 했더니,


 한 번만 봐줘 봐요~~~ 참, 딱딱하게 구시네
라는 게 아닌가.

웃으며 설명했더니 여지를 주는 것 같아,


 "선생님! 규정상 안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라고 눈을 크게 뜨고 단호히 말했더니,

 한 여성분이 그만 나가자며 데리고 나갔다.  




 분위기 즐겼으면 나가줘야 일이 된다는 무언의 압박감에 공감하며, 잔잔한 째즈선율을 뒤로하고카페문을 열고 조용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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