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지음-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끝까지 읽지도 않고 몇 장 넘기다, '이게 왜 베스트셀러야? 많이도 팔렸네'하고 처박아뒀었던 죄책감이었을까. 정독한 뒤 작가에 대한 부채감을 해갈하고자 에세이를 집어 들었다. 에세이엔 본인 이야기를 많이 쓰니깐, 작가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엔 그녀의 부모이야기였지, 정작 작가자신의 이야기는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그녀가 왜 이혼했는지 궁금했다.
그녀와 친구를 하려면 적어도 십 년 이상은 알고 지내야 한다고 했다. 그녀의 집에 방문하려면 '블루'를 들고 가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조니워커블루가 얼마인지 슬그머니 찾아봤다. 나도 그 술 한 병이면 작가에게 초대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씁쓸해졌다. 이제 겨우 독자들과 친해졌는데, 적어도 십 년은 기다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십 년 뒤엔 독자들에게 왜 이혼했는지, 아들은 뭘 하고 사는지, 그녀의 인생을 술술 털어놓으려나.
많은 소설가들이 에세이를 가볍게 쓰는데, 정지아작가는 참 공들여 쓴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더 신경 쓰였던 걸까. 꾹꾹 눌어 담아 썼다.
진심 부러웠다.
그녀는 인복을 타고난 것 같다. 웬 친구들이 그리 많은지, 나는 60이 넘어도 술 한잔 같이할 친구가 없을 것 같은데, 그녀는 책 한 권을 쓰고도 넘쳤다. 인맥이 부러웠다. 작가의 성공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책을 읽다 보면, 술 한잔 걸치고 싶어 진다. 마시지도 못하는 양주를, 홀짝이고 싶어 진다.
작년에 친구가 죽었다.
문득 죽음이 뭘까, 그렇게 쉽게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건가, 운전하다가 밥을 먹다가 잠을 자다가 꺼이꺼이 울었다. 네가 뭔데, 자식들을 버리고 그렇게 가버릴 수 있느냐, 네가 애미냐, 나는 너에게 친구였냐, 우울하단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죽어버리냐. 나도 데려가라, 그렇게 울어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너의 푸른 눈동자에 건배!>에 데이브 영어선생님 엄마가 다림질을 하다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목매달아 자살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래도 살아야겠지?라고 묻는 데이브에게, 목숨이 붙어있으니 사는 거라고 작가는 무덤덤하게 얘기한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거 아닌가.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친구가 죽었을 때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엔 슬퍼서 울었고 시간이 흐른 뒤엔 야속했다. 혼자서만 친구라고 생각했나 보다, 나 혼자만의 우정이었다보다, 배신감이 들었다.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어찌어찌 태어났으므로 우리는 어찌어찌 살아내야 한다. 고통이 더 많은 한 생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다림질하다 방에 들어가서 죽을 수도 있다니,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헤아리지 못한 슬픔이 내 친구만의 것만이 아니었단 사실에 조금 위안을 얻었다고 하면 너무 잔인한가. 이해받지 못하는 많은 죽음들 속에서 살아있는 나 또한 어찌어찌 오늘 하루를 또 살아냈다는 위안 속에서, 쓸데없이 한 자 한 자 끼적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