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만큼 원했던 이곳에서 나는 왜 죽을 것 같을까? -저자 원지수
제목이 훅 와닿았다. 외국계 영업직으로 일했다기에 P&G가 아닐까 했는데 역시나였다. 게다가 이직한 회사는 제일기획이었다. 나는 서류에서 탈락한 두 회사였기에 부러웠고 질투도 났다. 뭐야, 나랑 급이 다른 사람이구나. 그녀의 타이틀에 괜스레 위축되었다. 이런 비교하는 마음을 읽었는지, "나 '쟤처럼' 살고 싶은 건가:비교의 늪"이라는 글도 썼다. 여러 가지 고민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나도 유학가보고 싶었는데, 심지어 저자는 유학도 다녀왔다! 철학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저자가 심리학이나 사회학을 공부했으면 좋았을 텐데, 지레 짐작해 본다.
더 구체적인 회사이야기가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회사 내부 구체적인 에피소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는데 그 점은 조금 아쉬웠다.
나도 작년에 회사에서 죽을 것 같았다. 처음 복직하자마자, 15년 후배들한테 멸시와 구박을 당할 때, 팀장에게 까일 때, 아이들은 줄줄이 열이 날 때, 집안일이 돌아가는 게 엉망일 때, 굳이 이렇게 회사를 다녀야 하나, 외벌이로 넉넉하게 살진 못해도 허리띠 졸라매고 살면 안 될까, 여기 회사에서는 내가 죽을 것 같은데 내가 죽으면 애들은 누가 키우나, 그런 생각들을 하며 지하주차장 자동차 안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민원인도 아니고 동료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잘하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이 제가 보기에도 안타까웠습니다. -'홍보의 신', 김선태, 21세기 북스 -
나는 어떻게든 잘하고 싶었다. 그런 내 모습이 애처로웠다.
10년이나 쉬다 와서 회사에서 일 잘해보고 싶었는데, 나도 애 키우고 집안일하는 것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인정받고 싶었는데, 그렇게 아등바등 노력하는 내 모습이 애잔했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 그럼 자꾸 비교하게 되잖아."
남편의 한마디에, 욕심을 내려놓았다. 주변사람들의 평가를 내려놓고 승진을 내려놓았다.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고 어제의 나보다 하나씩 나아간다는 생각만 하고 살고 있다.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팀장의 한마디에 날세 우지 않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서 일을 해내려고 하기보다는, 규정과 매뉴얼을 찾아서 혼자 해결해 보려고 낑낑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부분은 눈치 봐가며 물어본다.)
만의 번뇌란, '남들에게 좋게 평가받고 싶어 걱정하며 본인의 주가가 깎일까 봐 조바심 내는 탐욕의 번뇌 중 하나'로, 일종의 자기 이미지에 대한 과한 집착으로, 상대가 가볍게 한마디만 해도 극도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며 자기변명을 늘어놓는다거나, 본인이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공감, 혹은 사과를 한다거나, 위로받으려는 상대에게 오히려 훈계를 함으로써 본인의 '더 나은 위치'를 위안 삼는다거나 하는, 어떤 면에서는 피해 의식과도 비슷한 맥락... ('왜 힘들지? 취직했는데', 원지수 지음, 인디고 p.170)
이 구절에서, 회사 직원이 내 업무처리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잘못된 일처리에 태클을 걸면, 내 인격이 모욕당하는 것 같아서 분개했는지, 뭐가 잘못되었는지 이해가 갔다. 나와 일을 분리해야겠다.
책의 말미에 하루에 스쿼트를 딱 한 개만 한다고 생각해 보라는 저자의 조언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나도 브런치에 글을 쓴다, 쓴다 해놓고 몇 년이 흐른 적이 많았지. 앞으로는 딱 한 줄만 써봐야지, 딱 1분만 러닝머신 뛰고 와야지, 아이들에게 칭찬 딱 한마디만 해야지, 회사일은 딱 하나만 해야지,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