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유럽 여행하기
많은 한국인들이 유럽여행을 꿈꾸지만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아 상당한 각오(?!)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있어 유럽여행이 그렇게나 흔한 이벤트는 아니다. 덴마크에 살면 가장 좋은 점은 유럽 여행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대륙 치고 유럽 주요 국가들은 생각보다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출발하여 대부분의 국가는 비행기로 두시간이면 도착한다. 나는 싱가포르에서 그랬던 것처럼(싱가포르에서 살면 좋은 점 - 여행 참고) 덴마크에서도 Monthly Trip 을 실천하며 틈만 나면 부지런히 여행을 떠났다.
직장인으로서 시간적으로나 비용적으로나 가장 알뜰한 여행 방법은 출장 일정에 개인 여행을 붙이는 것이다. 주중에 일정이 있다면 앞선 주말에 그 장소에 미리 도착하거나, 업무 일정을 마친 후 남아 주말을 보내고 오는 것이다. 개인일정에 대한 비용은 당연히 본인 부담하므로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문제 없지만, 일부 회사에서는 업무일정 외 출장지에 체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겠지만 별로 합리적이라 생각되진 않는다) 물론, 따로 개인 여행을 하지 않더라도 출장지가 외국이라면 로컬 음식을 맛보고 낯선 도시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글로벌 팀에 속해 있다보니 스페인, 독일, 체코 등 몇몇 지역에 출장이 잡히곤 했는데, 그때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특히 체코(Czech Republic)에서는 고객사 미팅 전날 현지의 영업 담당자의 인솔 하에 눈 오는 산장에서 숙박을 했는데, 이곳의 오리지널 필스너(Pilsner Urquell) 맥주는 목넘김부터 확실히 달랐다.
굳이 출장이 아니더라도 유럽 내에서 여행하는 것은 전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항공사마다 규정이 다르겠지만 유럽연합 국가 사이에서 이동할 때에는 여권을 검사하지 않을 정도로 유럽 내 여행은 쉽고 자연스럽다. 거기다 라이언에어(Ryanair), 이지젯(easyJet), 위즈에어(Wizz Air) 등의 저가항공사에서는 구입하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저렴한 항공권을 판매한다.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10만원 미만의 왕복항공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참고로 저가항공사를 이용할 때에는 수화물 규정을 아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기본 옵션으로 가벼운 백팩 정도만 허용하는 경우가 많아 추가 수화물 옵션을 구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항공사마다 크기 및 무게 규정이 천차만별이니 미리 알아보고 예약하자.
항공권이 워낙 저렴하다보니 오히려 내가 지내던 오덴세에서 코펜하겐 공항까지 이동하는 기차비가 더 비싼 경우도 빈번했다. 참고로 DSB 덴마크 기차는 미리 예약하면 할인금액에 구입 가능하니, 가능한 일찍 예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기차 대신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플릭스버스(FlixBus)는 저렴한 운임에 다양한 노선을 제공하는데, 오덴세에서 코펜하겐까지 이동할 수도 있고, 독일 등 인접 국가로 비행기 대신 이동할 수도 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 일부 지역은 크루즈 옵션도 있다. 밤에 출발하여 아침에 도착하는 노선의 경우 나이트클럽에서 밤샘 파티가 기다린다고 한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 중에서는 동유럽 지역이 특히 만족스러웠는데, 아무래도 저렴한 물가가 한몫 하는 것 같다. 덴마크에서 지내다보니 동유럽의 체감 물가는 한국에서 동남아 여행하는 것 혹은 그 이상이었다. 물론 볼거리와 먹거리가 균형잡힌 매력적인 관광지가 많았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Budapest)를 가보면, 금붉은 아름다운 야경은 기본이고 미슐랭 가이드의 음식도 (덴마크 기준)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수영복을 챙겨가지 않아 사우나를 못간 점은 아쉽다.
또다른 동유럽 국가인 폴란드의 크라쿠프(Krakow)는 기대한 것에 비해 가장 좋았던 곳이다. 부활절(Easter) 연휴 기간에 방문했는데, 마침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런지 여행 내내 기분이 최고였다. (여행은 날씨빨이다) 우선 유명 관광지인 바벨성(Wawel Royal Castle) 경치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압도적이었다. 참고로 밤에 바벨성 주변을 잘 찾아보면 한시간에 한번씩 불을 뿜는 드래곤을 구경할 수 있다.
폴란드인 동료가 말하길 크라쿠프는 나름 역사적인(Historical) 도시라고 했는데, 유대인 거리,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금광산 등의 문화 유산이 있는 곳기도 하다. 이곳은 무료 관광 가이드(Free Tour)가 있어서 나처럼 준비 없이 무작정 온 여행자들도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나는 유대인 거리(Jewish District) 투어에 참여했었는데, 이 지역은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폴란드가 자랑하는 쇼팽 또한 관광객에게 좋은 즐길거리였다. 쇼팽 피아노 연주회에 참석하여 간만에 교양 문화인이 되어 보았다.
먹는 것도 더할 나위 없었다. 골롱카라고 부르는 폴란드식 돼지고기 요리도 좋았고, 유대인 거리에는 피자바게트와 비슷한 Zapiekanka(어떻게 발음하는지 모르겠다)라는 길거리 음식이 있는데 딱 내 취향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1일 1아이스크림은 필수다. (1일 3맥주는 선택..)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서로 비슷할 것 같지만, 어떤 스타일의 여행을 선호하는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곤 한다. 문화 유적, 휴양, 자연, 도시, 쇼핑 등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여행의 성격은 전혀 다른 모습을 띄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의 다양한 부분에 매력을 느끼는 편이지만, 지난 여행들을 돌이켜볼때 내게 가장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순간들은 아름다운 자연(Nature)과 함께 였다.
그동안 지쳐버린 심신에 강한 힐링이 필요했기에 덴마크에 도착하자마자 노르웨이로 짧은 트래킹 여행을 떠났다. 트롤의 혀처럼 생겼다는 트롤퉁가(Trolltunga), 영화 미션임파서블에서 톰크루즈가 아찔한 액션 연기를 선보인 펄핏락(Pulpit Rock) 등 아찔한 절경을 자랑하는 트래킹 코스를 선택하고 길게는 10시간 넘게 열심히 걸었다. 노르웨이의 여름이 선사하는 청량함은 정말이지 어마무시하다.
코펜하겐의 공항을 돌아다니던 어느날 우연히 페로제도(Faroe Islands)라는 목적지를 보았고 막연한 호기심이 생겼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한국의 여행 매니아들 사이에서 조금씩 뜨고 있는 여행지였고, 갤럭시노트 광고영상을 촬영하면서 유명세가 높아지고 있었다. 덴마크령의 이 작고 아름다운 섬은, 덴마크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코펜하겐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도 많아 덴마크인들이 휴가로 종종 오는 곳이라고 한다. 덴마크를 떠나기 전 마지막 여행지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곳이었다. 사실, 1년 중 300일 정도는 비바람이 오는 곳이라 하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내가 머물던 동안 하필 완벽하게 맑았다. 여행은 역시 날씨빨이다.
이 외에도 노르웨이 오슬로, 스웨덴 말뫼, 독일 베를린, 오스트리아 비엔나, 스위스 등 수많은 여행들이 너무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생각해보면 아쉬움도 많다. 오로라를 보러 덴마크에서 가까운 아이슬란드에 가보지 못한 것도 아쉽고 벨기에, 루마니아, 에스토니아, 모로코 등등 한번쯤 경험해보고 싶었던 미지의 세계가 미련으로 남아 있다.
어쨌거나,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덴마크에 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언제든 유럽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외국 생활은 한번쯤 도전해볼만한 좋은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