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휘게 라이프
지속가능발전 해법 네트워크(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라는 유엔(United Nations) 산하 자문 기구에서는 매년 세계행복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2020년 발표된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20)에서는 덴마크가 세계행복지수 2위를 차지하였는데, 지난 8번의 보고서에서 3위 밖을 벗어나지 않은 나라는 덴마크가 유일하다. 행복(Happiness)이라는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점수를 부여하고 국가별 순위를 매긴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에서 행복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며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를 측정하고자 노력한 결과인 만큼, 신빙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분명,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여전히 행복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깔끔하게 정리되진 않지만, 덴마크인들과 이야기하고 있으면 이들은 충분히 행복해보였다. 덴마크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의 가장 큰 궁금증은 이것이었다. 대체, 덴마크가 뭐가 그리 특별해서 행복하다고 난리일까? 과연, 덴마크만의 행복의 비결은 무엇일까?
덴마크에 도착한 다음 첫 근무일에는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았다. 대신 자치단체(덴마크어로 Kommune, 영어로 Municipality)에 거주를 위한 등록을 하고 은행을 방문하여 계좌를 개설하였다. 덴마크 거주자의 등록번호인 CPR Number가 발급되고, 며칠 기다리니 거주자 신분증(ID Card)과 의료카드(Yellow Card라고 부름)를 우편으로 받았다. 그런데 열흘이 넘도록 은행의 직불카드(Debit Card, 현금 인출 시에도 사용한다)가 오지 않길래 답답한 마음에 은행을 찾아가 하소연을 하였다. 은행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기다려보라고 한다. 다급함을 소호하며 재촉을 해도 아주 평온하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봐달라는 요청은 묵살된다. 배송으로 넘어갔으니 조회가 어렵다고 한다. 은행원은 흥분한 나를 진정시키며 다음과 같이 말했고, 나는 더이상 할말을 잃었다.
"어쩔 수 없어, 여기는 덴마크야."
그 다음주가 되어도 받지 못해 은행을 다시 찾았고, 이번에는 중간에 문제가 생긴 것이 확인되었고, 다시 신청해야 했다. 결국, 은행 카드를 신청하고 이를 전달받기까지 꼬박 한달이 걸렸다. 신청하면 그날 바로 카드를 발급해주는 한국이나 싱가포르의 은행과 너무 달랐다. 이 경험을 통해 덴마크인이 왜 행복한지 한 가지 비결을 깨달았다. 그들은 업무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아마 우리는 고객이나 직장동료(주로 상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런데 덴마크인들은 다르다. 고객이나 동료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해 스트레스를 감수하면서 특별히 신경써주지 않는다. 물론, 사람이나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적당한 선에서 처리하는 것이 전반적인 업무 문화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덴마크의 동료들과 업무를 하면서 이미 느끼고 있었던 부분이다. 그들은 고객으로부터 급한 요청사항이 있더라도 답변을 주는데 한세월이 걸린다. 마치 돌부처 같달까. 필요하면 야근을 불사하는 한국과 문화가 달리, 직원 입장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물론 그들도 회사 밖에서는 고객이기에 일상생활에 불편한 부분이 있겠지만 이에 대해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 외에도 덴마크를 열심히 관찰해보니 불편할만한 점이 한 두개 아니었다. 덴마크 생활 - 급여 & 세금 편에서 언급했듯이 세금이 세계 최고(높을 高) 수준이다. 그런데 이들은 세금이 덴마크인들을 위해 잘 사용될거라 믿기 때문에 괜찮단다. 정부 뿐만 아니라 업무나 사람에 대한 신뢰도 높은 편인 것 같다. 덴마크인들이 지니고 있는 신뢰는 이들의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물가가 비싼 것도 내게는 결코 달갑지 않았다. 한국에서처럼 자주 외식하고 쇼핑한다면 덴마크에서 돈을 모으기 어려울 것이다. 덴마크는 교통비도 비싸다. 택시를 15분정도 타고 이동하면 5만원 정도 내야 할 것이다. 심지어 기차나 버스도 비용이 상당하다. 그렇지만 덴마크인들은 높은 물가에 대해서도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 일단, 외식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집에서 해먹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 친구들끼리 만날 때에도 감자칩과 맥주를 사들고 한 집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쇼핑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왠만한 가구나 생활용품은 IKEA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 등을 통해 중고거래가 활발하여 필요한 물건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교통비가 높으면 또 어떤가, 자전거를 타면 되는데. WIRED에서 조사한 지구상에서 가장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The 20 Most Bike-Friendly Cities on the Planet, Ranked) 덴마크의 코펜하겐은 당당히 1위를 차지하였다. 코펜하겐 뿐만 아니라 덴마크 전역은 땅이 평평하고 자전거 도로가 잘 구축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자전거는 가장 보편적인 교통수단이다. 심지어 아이를 트레일러에 태우고 다니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나 또한 출퇴근은 물론이고 오덴세 안에서 이동할 때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였다. 이렇듯, 물가가 비싸도 이를 극복할 방법이 있기에 그들은 불행하지 않다.
덴마크는 날씨도 참 별로다. 한달 남짓한 짧은 여름을 제외하면 비오고 흐린 날이 대부분이고 바람이 많이 불어 쌀쌀하다. 본격적인 겨울이 되면 밤이 길어져 오후 4시 정도면 해가 지기 시작한다. 덴마크 날씨가 좋지 않다는 것은 이곳 사람들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날씨때문에 무너질 덴마크인들이 아니다. 왠만한 추위는 거뜬히 이겨내고, 짧은 여름을 확실히 즐긴다. 여름이나 겨울에 좀더 더운 지역으로 여행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덴마크의 지인 중 한명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린 강한 바이킹족이니깐 이정도 날씨엔 끄떡없어."
덴마크에는 휘게(Hygge)라는 개념이 있다. 번역이 난해한 이 단어에 대해 왜 덴마크인들은 행복한가?(Why are Danish people so happy?) 라는 아티클에서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소소한 부분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taking time away from the daily rush to enjoy the good things in life)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 단어가 덴마크 행복의 비결을 암시하는 것 같다. 내가 짧은 시간이나마 덴마크에 살면서 덴마크인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점은, 결국 특별히 좋은 조건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져보면 덴마크는 한국보다 열악한 부분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행복하단다. 그들은 대체로 자존감이 높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한국에 사는 우리들도 덴마크인들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희망을 가져본다.
덴마크, 행복의 비결
- 낮은 업무 스트레스
- 정부, 업무, 사람에 대한 신뢰
- 문제를 극복할 방법
-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태도
- 높은 자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