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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 Jobplanet Dec 20. 2019

대기업 인재의 앞날은 핑크빛일까?

이여진 

올해 삼성전자 퇴직 인원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삼성그룹 전 계열사 퇴직 인원은 몇 명일까요?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 계열사 퇴직 인원은 몇 명일까요? 
그럼 대기업 출신을 채용하려는 기업은 몇 개나 있을까요? 
몇 명이나 채용될까요?




제가 아는 유능한 헤드헌터 한 분은 이제 막 대기업을 나왔거나, 나올 예정인 분들에게 위의 질문을 꼭 던진다고 합니다. 


대기업을 나온 후 커리어 관리에 실패하는 수많은 후보자들을 보았기 때문에 핑크빛 미래를 약속하기 보다는 현실을 알려주고, 철저한 대비가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죠.  


얼마나 많은 분들이 공감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아주아주 깊게 공감합니다. 

그 이유를 이제 적어볼까 합니다. 




첫째, 이직 시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에 재직 중인 분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중소기업으로의 이직은 쉽다' 입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출신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대기업의 기술력, 선진화된 업무 시스템, 동원할 수 있는 네트워크 등 중소기업이 확보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대기업 출신 인재가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기업 출신이라고 무조건 환영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오히려 더 까다롭게 잽니다. 왜 그럴까요? 


대기업 인재 채용이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업무 환경 차이로 인해 적응하지 못하고 금방 퇴사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 내용은  뒤에 더 자세히 기술하겠습니다.) 


이런 경험을 몇 번 반복한 중소기업이라면 대기업 출신을 곱게 보기가 어렵겠죠. 

높은 연봉을 주고 대기업 출신을 영입했는데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퇴사해 버린다면 중소기업에겐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어느 중소기업 사장님은 대기업에서 '부장급'으로 퇴직한 사람은 아예 채용 대상으로 검토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지론은 대기업에서 '부장급'으로 퇴직했다는 것은 사업의 일부만을 책임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사업 전반을 관리할 능력은 부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날고 기는 대기업에서 재직했다고 하더라도 우리 회사에 맞지 않는다면 채용하지 않겠다는 뜻이죠. 


대기업을 나와 이직 시장에 발을 들이면, 아무리 대기업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을'의 위치에 놓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직 시장은 수요공급의 원칙이 철저히 적용되는 곳이며, 이 수요공급의 원칙을 깰 수 있는 존재는 '탑 티어 플레이어'라고 불리는 소수일 뿐이죠. 




둘째, 혼자 완성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이유가 가장 큰 이유이자, 이직을 염두하고 있는 대기업 재직자분들이 깊게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피자를 만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대기업에는 재료를 사오는 사람, 도우를 만드는 사람, 소스를 바르는 사람, 토핑을 올리는 사람, 화덕을 관리하는 사람, 구워진 피자를 8조각으로 자르는 사람, 포장하는 사람 등이 다 나뉘어져 있다면, 

중소기업에서는 한 사람이 피자 한 판을 온전히 만들어 포장까지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A부터 Z까지 전 과정을 커버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대기업에서 도우를 전문적으로 만들던 분이 중소기업에 오면 이런 불만들을 종종 합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훌륭하게 적응하고 성과를 내는 분들도 분명 있습니다.) 


밀가루 공급이 안 된다, 소스가 부족하다, 토핑 재료가 신선하지 않다, 화덕 온도가 안 맞는다 등등...

피자를 만드는 전 과정이 본인의 업무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왜 회사는 나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냐, 체계가 안 잡혀 있는데 어떻게 일을 하냐, 피자를 그렇게 주먹구구로 만들면 안된다 등등... 말이죠. 

그러고는 곧 퇴사를 합니다. 



삼성전자가 2019년 11월 14일에 공시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남성은 12.3년, 여성은 10.7년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LG전자는 남성 11.9년, 여성 9.2년 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공채 입사자 비율이 높은 조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뒤, 책임급(과장 말~차장 초)에서 많이 퇴사한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중공업, 건설, 자동차 등 이직이 비교적 적은 업계는 근속연수도 긴 편입니다.) 


과장 말~차장 초, 이 시기에 대기업을 나온 인재들은 적극적으로 이직을 시도하고, 실제로 이들에 대한 수요도 높습니다.

중소기업의 눈높이가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대기업 출신의 실무급 인재는 매력적인 존재이기 때문이죠. 

또한 이분들은 아직 젊고, 공채를 뚫고 입사한 분들이라면 학력이나 스펙이 훌륭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이직에 자신이 있고, 실제로도 대기업 퇴사 이후 첫 이직은 비교적 성공적인 편입니다. 


하지만 이직 후 '적응'의 단계로 가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대기업에서는 도우만 만들면 됐는데 이직하고 나니 피자 한 판을 혼자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거죠.

물론 적응력이 남다르고, 상황을 빠르게 캐치하는 분들이라면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10~12년 동안 체득된 업무 스타일을 바꾸고, 시야를 확장하고, 책임과 권한이 갑자기 늘어나는 상황을 감당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체계적인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던 태도에서, 

책임을 지고 완성시킬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하고, 자원을 확보하고, 상사를 설득하고, 때로는 영업도 뛰어야 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러한 상황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채, 비슷한 패턴의 이직을 몇 번 반복하면 대기업 출신이라는 메리트는 무색해지고, 몸값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부적응'이라는 타이틀만 남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대기업 퇴사를 앞둔 분이라면 이직 시장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과

혼자서 업무를 완성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점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창 비트코인이 유행할 때, 비트코인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실제로는 적지 않은 금액을 날린 분들도 많은데 말이죠. 


이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기업을 떠나 중소기업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기업을 떠난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과거의 자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다만, 어두운 이야기이니 서로 언급하지 않을 뿐이죠.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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