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은 줄고 '생각'은 많아졌다
안녕하세요. 김혜리입니다.
3월 24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라떼 시절엔 이런 걸 '원래 사회생활이 힘든 거다', '대인관계가 가장 어렵다'라고 퉁치곤했는데,
이제는 법이 미처 챙기지 못한 사각지대까지 메꿔가고 있습니다.
정말 도덕적으로 비난받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으며,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가 된 것이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법이 정교해지는 만큼 회사생활 속 인식도 다듬어져 가고 있을까요?
19년부터 21년까지 1월과 2월의 리뷰 중 갑질이 언급된 리뷰 개수와 유입 리뷰 대비 비율을 살펴보았습니다. 음... 키워드의 수나 비율로 변화를 체감하긴 어렵군요.
그럼 갑질이 언급된 리뷰들 속에서 빈출 키워드를 뽑아 볼까요?
오, 이제 뭔가 좀 보이는 것 같네요.
*갑질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리뷰를 대상으로 한 만큼 '갑' 혹은 '갑질'이라는 키워드와
장단점 리뷰 전반에서 통상 빈출되는 키워드(회사, 사람, 기업, 일, 근무, 연봉 등)는 순위에서 제외
52시간 근무제 도입 덕분인 걸까요?
19년에 빈출 키워드 1위를 기록했던 야근은 20년 3위, 21년 6위로 감소세를 보입니다.
아쉬운 점은 직장 내 불필요한 야근은 많이 줄었지만 올해는 고객님이 집에 안 보내주시네요.
매일 야근임. 주말에도, 공휴일에도, 퇴근해도 고객사 대응함. 그냥 고객사 노예임
고객사의 쪼임에 시달리는 업무 스트레스와 야근. 고객사가 개발자한테 다이렉트로 연락하는 경우도 많음
일정이 나오면 밤을 세워서라도 지켜야함. 고객사가 왕이란 말을 뼈속까지 경험할 수 있음
고객사랑 협의가 아니라 고객사 명령에 따르느라 늘 직원들만 죽어남. 안 되는 일정도 맞춰야 되고 걍 노예임. 엄청난 야근으로(밤 9시 기본, 야근수당 없음) 고질병 얻고 이런 소리 들으면서까지 일해야 되나 싶음.
고객사 요구사항을 100% + @로 해줘야 하기 때문에, 같은 급여를 받으며 일해도 어떤 고객사가 배정되는지에 따라 평소 퇴근 시간이 23시가 될 수도 있음.
업계 특성상 갑질이 심함. 상대가 현***이니 말 다 했음. 고객 직접 대응하는 부서는 정말 피곤함.
고객사 앞에서 나에게 '협의, 주말, 공휴일, 퇴근'은 없고 '일정, 명령, 야근, 밤샘'만 있습니다.
언제나 전적으로 맞춰야 하지만 보상은 전혀 없기에 갑질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내년에 '야근'이 순위권에서 사라지는 것,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야근'과 반대로 '생각'이라는 키워드는 19년 3위, 20년 2위, 21년 1위를 기록했습니다.
'생각'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등장하는 리뷰 내용은 이렇습니다.
직원을 노예/하인/로봇/소모품이라고 생각한다
직원을 돈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군대문화로 시달리다가 쓰러지겠다는생각이 듦
소중하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인간답다고 느끼지 못할 때' 갑질을 당했다 말하고, '왜 살아야 하지?' 생각하기도 합니다.
도구나 수단이 아닌 소중한 사람으로 생각되길 바라는 마음, 인간다운 삶에 대한 추구가 더 강해졌습니다.
지난 2년 대비 눈에 띄는 것은 본인의 직무 범위를 넘어서는 일을 할 때 갑질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점인데요.
연구직으로 입사했는데 생각보다 연구가 아닌 영업을 더 많이 해야한다
회사에 입사해서 온갖 정신병 다 얻고 왜 살아야하지까지 생각이 든 곳이다. 민원도 극성이라 정상적으로 행정업무를 쳐낼수 없다. 도대체 어느회사가 회계나 채권처럼 돈다루는 업무를 하면서 민원을 시키는가
근로계약서 쓰며 하기로 한 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내 커리어를 모두 뒤로 해야 한다면 그럴 법 하죠?
19년과 20년에 순위권에 존재했다 사라진 키워드들이 있습니다.
바로 '연차', '퇴근', '가족', '눈치', '상사'입니다. 이 키워드가 포함된 리뷰들은 이런 내용이 특징인데요.
연차를 자유롭게 쓸수 없고 휴가 반려를 잘하며 연차 쓰거나 퇴근할 때 눈치를 봐야함
자식과 친지와 함께하는 가족경영으로 회사 꺼는 내 꺼, 내 회사는 내 맘 마인드로 생기는 폐해가 많음
상사(상급자 또는 선배)가 꼰대(권위적이고, 일을 안하며, 부하를 방패로 쓰는)임.
주 52시간 덕분에 상사도 일찍 퇴근 해야 해서 일까요? ㅎㅎ
지난 2년 대비 올해는 상사의 갑질, 연차나 퇴근으로 눈치를 주는 일은 많이 줄었습니다.
유난히 갑질 리뷰에서 언급이 많던 가족회사도 순위권 밖이네요.
계약이라는 키워드는 대부분 계약직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주로 초과근로나 책임(의무) 범위 이상의 요구나, 무시와 차별 그리고 무관심에서 비롯된 갑질이 많았습니다.
지속적 처우개선에도 불구하고 계약, 무기계약직에 대한 복지는 다소 적다
주된 고객사가 케** 계열사인데 케** 답게 갑질이 끝내줌. 도급인데 단톡방에 들어 와있음
계약직에 대한 차별이 있고, 계약직 파견인데 근로계약서 시간보다 초과근로했음
계약직은 볼트 수준. 정직원은 무시하고, 팀장과 2년간 대화 거의 없을 정도로 무관심하며 힘들고 더러운일은 계약직의 것. 계약직은 그냥 쓰다버리는 직원으로 생각함
변화한 것들도 있지만 21년에도 여전한 것들도 있습니다. 남은 키워드들 좀 더 살펴볼까요?
2위 '부서'와 4위 '팀'은 동일한 맥락인데요. 같은 회사 내에서도 부서(팀) 간 갑을이 존재한다고 느낍니다.
부서마다 분위기 너무 다름. 갑질하는 팀이 간혹있어 어쩔때는 무슨 다른 회사 사람들 같음
경영지원 부서는 갑질하는 조직. 지원부서가 영업부서보다 크고 힘이 쎈 회사
영업이 회사에서 갑임. 대표가 영업에게 힘을 엄청 많이 실어줌
대표가 연구직 출신이라 연구부서의 갑질이 심함
3위 '대표'와 7위 '사장'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사실 부서(팀) 갑질에도 지분이 좀 있으시죠.
갑질의 정도가 심해도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대표가 예민할 때, 특정 직원이 맘에 안들 때 정신 공황이 올 때까지 괴롭히고 직원들 앞에서 개망신을 줌
대표부터 딸과 사위까지 가족으로 뭉친 갑질 회사. 마음에 안들면 부서이동시키고 제 발로 나가게 괴롭힘
대표가 여직원한테 '남자친구 있냐? 왜 없냐? 밖에 가서 연구원 꼬셔서 결혼해라'라고하며, 업무 외 사적인 술자리를 하자고 함
윗분들은 성희롱하고, 술 강요는 사회생활로 둔갑합니다.
용기를 내 고충을 토로해도 외면받는 상황, 갑질을 피할 길은 퇴사뿐입니다. 그리고 퇴사자는 참지 않죠.
윗선은 성희롱하고 관리소에서 술먹으면서, 술안먹는다고 사회생활 안할거냐 하고...여기서 똑똑하고 일잘하면 손해다 일 퇴사와 동시에 부당한 업무지시, 직장내갑질자료 다 고발할 예정이다
팀장의 이상한 매니징 때문에 면담신청했는데 너 하나 조용히하면 아무 이슈 없이 모두가 잘 다닐 수 있다고함. 회사에 고충을 털어놓을 부서가 따로 없어 퇴사 이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음
고성과 함께 무언갈 던지고, 혼자 친한척 반말을 하며, 눈 밖에 나면 인사평가는 끝이라네요.
팀장의 성향 따라 근거도 없이 인사고과로 팀원에게 갑질.
몇 년째 소리지르고 던지는 팀장(매일이 갑질 괴롭힘의 연속), 직원들이 갈려나가는 걸 알면서 눈감는 HR
팀장은 언제 날 봤다고 반말 찍찍 하면서 이름 부릅니다. ~씨가 아니라 순자야! 일루와봐 이래요.
출퇴근 휴무 점심시간 등 까지 모든 게 팀장 입맛대로 일이돌아감
무엇인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지나칠 때 갑질이라고 느낍니다. 꼭 내가 당한 게 아닐지라도요.
벤더로 일하는 동안 눈치밥을 엄청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규직 프라이드가 정말 강해 계약직 차별이 심하다곤 들었지만 그 정도일줄은 몰랐음. HR에서 임시 출입카드 하나 제때 발급 안 해줘서 입사하고 2주 동안 출입증 없이 출근하고 혼자 엘리베이터도 못 탔음.
무안할정도로 업체한테 갑질이 너무 심하나 그걸 너무 당연시 생각함.
업체에 소리 잘 지르고 목소리 크고 우기면 일 잘한다고 함. 나중에 자기도 모르게 그러고 있는 걸 발견하할 정도되면 이미 늦었어요... 보는 내가 다 쪽팔리고 창피함 ㅉㅉ
이번 갑질 관련 리뷰를 분석하면서
사람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도 다르고 갑질로 인식하는 부분 역시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내가 당한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회사가 갑질이 심하다고 리뷰를 남기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요.
어쩌면 우리가 상사-부하, 선임-후임, 고객-직원, 발주사-수주사 등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맥락에 따라 '갑'이 되기도 '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때문에 개인의 도덕성에만 의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ESG 경영이 화두가 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어느 때 보다 더 주목받는 요즘입니다.
22년에 이 키워드만큼은 꼭 OUT 시키겠다는 목표를 설정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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