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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준생LAB May 17. 2021

[컨설팅] 나 홀로 인터뷰

의식의 흐름대로 살던 엠제이는 고객 인터뷰 중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Prologue


"요즘 매출은.... 예전에 비해서..$%#$%&@#$&^*%$#%"

옆에서 음성이 들리자마자

독수리타법을 구사하던 내 오른손가락은 자판 위를 급박하게 쪼아대고 있었다.


'원래 맥킨지에 입사하면 일 년 정도 속기록만 시킵니다'라는 말을 듣고

대표님 옆을 따라다니며 현장 인터뷰 속기록을 시작한 지 어연 한 달째,


급작스럽게 비즈니스 컨설팅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 엠제이는 

오늘도 하루와 힘겹게 싸우고 있다.






맥킨지에서 문제 해결 과정은 세 개의 주요한 요인들로 이루어진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원들이 처음으로 모임을 가질 때, 이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책을 도모한다.

사실에 근거한다(Fact-based)

구조화한다(Rigidly structured)

가설을 수립하고 접근한다(Hypothesis-driven)

-에단 라지엘 맥킨지는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중





현재는 고객 인터뷰와 동시에 데이터를 구조화하며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는 중이다.


의뢰한 업체로부터 5개년치 데이터를 받고 분석을 시작했다.

데이터를 이렇게 저렇게 치대면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된다는 건 좀 재미난 일이다.


엑셀을 신나게 두드리다 보니 특출난 숫자를 가지고 있는 지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근데 우리 집 근처다.


"그럼 여기는 제가 혼자 인터뷰해볼까요?"

"어 그래 볼래?"


어떻게든 대표님 깍두기 티를 벗고 싶어, 집 근처에 위치한 지점 인터뷰는 혼자 진행하기로 했다.

혼자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나의 당찬 포부가 위험해 보였는지 대표님은



대표님은 중국어 능통자, 나는 중국어 초급자

'没有压力就没有进步‘ (스트레스가 없다면 발전도 없다)

라고 카톡 메시지를 보내셨고

나는

其实我没有什么压力 (사실.. 그다지 스트레스받지 않아요..)

라고 보내려다가 말았다.


그렇다.

나는 내적 스위치만 켜면 인싸다운 행동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인터뷰하겠다고 스스로 내뱉던 순간부터 묘한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중이었다. 

물론 아무도 몰랐겠지만.





하지만 나는 전화통화는 부담스러워하는 밀레니얼 세대다.

어느 정도냐면, 운영하고 있는 가게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전화가 와도 무섭다.



아, 이것이 바로 넘어야 할 산인가.


한숨 크게 들이마시고 전화로 먼저 점주님께 인터뷰를 요청했다.


"안녕하세요. 00의 엠제이입니다. 다름 아니라...."

".. 오전이 안 바빠요, 오전에 오세요" 


다행히 오라고 하신다. 


아, 이렇게 산을 넘어가는 건가.







그렇게 집에서 버스를 타고 약속된 시간에 인터뷰 현장에 도착했다.

... 근데 왜 점주님이 안 계시지?


"사장님 30분 뒤에 오신대요"

"... 기다려도 되나요?"

"네"


미안, 난 원래 멍 때리기를 못한다.


30분 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멍 때리기를 못하는 나는 

정리해둔 질문 리스트를 3000번 읽었다.


정적이 조금 심하다 싶을 무렵, 마침내 문이 열리고 후광과 함께 점주님이 들어오셨다.

근데 약간 불편하신 기색.


"그래서 뭘 물어보러 온 거예요?"


다소 잡상인 취급을 받는 것 같았지만,

그렇게 시작한 나의 첫 단독 인터뷰 시작.






나는 긴장하면 말이 빨라지는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인터뷰 내내 아나운서처럼 또렷이 발음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 다짐은 5분을 넘기지 못했다.)


"그렇게 하면 사장님께서는 남는 게..?"


질문을 하다 보니,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나는 평소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친구들과 대화하다가도 갈라진 벽을 보고 예전 시골집을 얘기하는 타입이었다.


압축해서 시간을 잘 써야 하는데,

대표님이 질문할 때와는 다르게

비슷한 질문을 하느라 시간이 1.5배로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버르장머리를 고치지 못한 나는 일단 방향을 틀었다.


사장님과 같이 울었다.  (출처 : 망상 토끼)


"어멋! 이런 걸 얘기해 주시는 건 사장님이 처음이에요"

"사장님이 잘되야지요!"

"아니 사장님 너무 애쓰시는 거 아녜요?ㅜㅜ"

"어떻게 이렇게 지내셨던 거예요?ㅜㅜㅜ"


내가 팔자 눈썹을 그리며 사장님의 말씀에 공감해주자,

인터뷰 후반에 갈수록 사장님은 나와 동화되어 막말을 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니까, 걔네들은 버릇이 없다니까요"

"우리끼리 그런 얘기도 해요"

"그래, 그 태도가 문제예요. 이게 먼저예요. 이걸 일 번으로 적으세요."


이제 내 펜대를 자유자재로 조종하시기까지 하셨다.



그렇게 속 시원하게 인터뷰를 마치고 사장님의 친절한 배웅과 함께 대리점을 나오게 되었다.

1시간.. 참 긴 시간이었다.





속기록은 노션에 차곡차곡 정리 중이다. 노션 사랑해


속기를 같이할 수 없어 나중에 다시 질문과 답변을 정리하는데 

질문이 중구난방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꽤나 걸렸다.

이렇게 고객들의 생소리와 더불어 데이터에 살을 붙여가는 과정을 거쳐가고 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피드백할 점은


1. 답변을 머릿속에서 최대한 정리하며 질문해야겠다.

2. 유도하는 질문은 최대한 자제해야겠다.

("원인이 뭔가요? 00 인가요?"라고 질문하면 "00죠" 라며 유도된 답변이 되돌아온다. 추후 비슷한 질문을 하면 "00"가 첫 번째 원인이 아니다.)

3. 질문과 예상답변, 추가 질문을 주제별로 묶어서 준비해야겠다


사실 난 아직 조무래기라는 것을 느낀 게 가장 크다.

더 이상 의식의 흐름이 아닌 정렬의 인생의 살아야겠구나.



이 날 인터뷰 중 마신 하늘보리와 인터뷰 후 만난 꼬마 고양이 




언젠간 남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엠제이가 되기 위해

오늘도 지식을 흡수하는 밤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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