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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준생LAB May 27. 2019

[취준생 일기] 밤에는 라면이 익고, 마음에는 부끄러움

취준생 일기 여섯번째 이야기



요새는 유난히 배가 헛헛하다. 분명 저녁으로 고기를 먹었는데, 밤이 깊어지니 뜨끈한 라면 국물이 생각났다. 입으로 스트레스를 풀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미 냄비를 쥔 손이 어리둥절했다. 팔팔 끓는 물에 스프를 넣자 금세 라면 향이 올라왔다. 그렇게 밤은 깊어지고 라면은 순식간에 익었다. 책꽂이에 꽂혀있던 인적성 문제집 위에 뜨거운 냄비를 올렸다. 그러자, 모니터 앞에 김이 오른 라면이 비쳤다. 한 젓가락 입에 넣자, 위장이 벌써 만족해 꿈틀거렸다.


오늘도 끓였다. 꼬들한 라면



정신없이 먹다 보니 검은 화면으로 바뀐 모니터가 신경 쓰였다. 마우스를 잡자 바탕화면 중간에 ‘자소서’ 폴더가 눈에 띄었다.


작년 하반기 D사에 입사하게 된 선배의 조언을 받으며 열심히 적은 자소서. 직접 첨삭까지 받았는데, 또 떨어졌다. 가슴속 생채기에 아직 딱지가 생기지도 않았지만, 굳은 결심을 하고 파일을 클릭해봤다. 미동도 없는 워드 창 위에 마우스 커서만이 깜빡였다. 내 이야기를 적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힘든 건지. 어떻게 내 이야기를 자소설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소설도 맥락이 있어야 쓸 수 있지,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모르는 이 맥락 없는 평범한 경험.


기업들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지원하는 나의 속내를 너무 잘 아는 것 같다. 열정이 있는 지원자. 그래 그게 나는 아니지. 그럼 합격자는 다 열정이 있던 걸까? 인터넷에 들어가 ‘합격 자소서’를 찾아보기로 했다. 자괴감이 드니 자주 읽지 말라고 선배에게 조언 받았는데, 이미 자괴감은 많이 들었으니 괜찮다.


한켠에 제쳐둔 라면이 점점 식어갔다.



당신들은 도대체...



‘00사인턴’, ‘해외봉사’, ‘오지탐방’, ‘00공모전1위’, ’00사경력자’ 아니, 다들 어디서 이런 경험들을 쌓고 온 거야? 요즘은 인턴도 금턴이고, 해외봉사도 면접을 봐야 뽑히는데…. 저 경력자는 왜 신입으로 지원하는 거야? 비교 대상이 되지 않으니 질투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 이런 사람들이 수두룩인데, 내 경험이 인사담당자의 눈에 들어갈 리가 없지.


경험을 쌓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조금이라도 다른 경험이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고 하드디스크를 클릭했다. 대학생활 동안 저장해뒀던 과제물, 사진들을 보며 ‘추억 팔이’가 아닌 ‘추억 캐기’를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역량에 관련된 경험을 발견해 보겠다'는 절박한 심정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의미없는 파일들 속에, 풋풋한 신입생 때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세상모르고 환하게 웃는 과거의 나.

지금의 난 과거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부끄러운 마음이 찾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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