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감촉
나는 시간의 감촉을 좋아한다. 그래서 빈티지를 참 좋아한다. 옷이든, 악기든, 물건이든 새것보다는 오래된 것에 마음이 간다. 반듯하게 정제된 표면보다, 닳고 긁히고 변색된 흔적들이 나를 붙잡는다.
그 흔적들은 결함이 아니라 시간의 언어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것은 완벽하다. 그래서 작은 흠도 오히려 아주 커다란 흠이 된다.
새것들은 아직 아무것도 겪지 않았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았으면서도 늘 스스로를 번쩍번쩍 뽐내려 한다.
반면 오래된 것들은 말없이 많은 시간을 통과해왔다. 사용되었고, 버텼고, 그럼에도 남아 있다. 나는 그 ‘남아 있음’에 묘한 신뢰와 매력을 느낀다. 빈티지의 아름다움은 세련됨에 있지 않다. 투박함, 불균형, 약간의 어긋남. 그것들은 설계된 미가 아니라 축적된 아름다움이다. 구식이거나 더럽다고 치부될지언정, 많은 세월의 질타를 견뎌낸 것들만이 지닌 단단함이다.
그래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왜 아름다운지”를 설득하지 않고, 그저 그렇게 존재하여 증명한 것들이다. 아마도 내가 이런 것들에 끌리는 이유는, 사물을 바라보는 나의 방식이 언제나 결과보다는 그에 이르는 이유와과정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언제나 결과보다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이유와 과정을 궁금해 한다. 정답처럼 보이는 말들보다는 그 말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맥락을 더 궁금해한다. 클래식한 것들을 좋아한다는 건 과거에 머문다는 뜻이 아니라기원을 의식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유에는 시작점이 있고, 모든 형식에는 최초의 몸짓이 있다. 나는 늘 그 처음의 떨림을 더듬으려 한다. 이미 검증된 형식, 오래 반복된 리듬 속에는 유행을 넘어서는 기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의 생각은 종종 고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빠르게 소비되는 언어보다 시간을 통과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서 인걸까. 지금 당장 반짝이기보다 오래 만져질 수 있는 생각이 되기를 바란다. 빈티지를 좋아한다는 것은 낡음을 숭배하는 태도가 아니라 시간을 통과한 것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생각 역시 그렇게 익어가기를 바라는 사람일 것이다. 새로운 생각이 아니라 살아남을 수 있는 생각. 완성된 사유가 아니라 끝까지 닳아도 형태를 잃지 않는 사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 닳은 것들 곁에서 나의 생각을 천천히 마모시키며 살아간다. 그 생각들이 완성되지 못할지언정 오래도록 남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