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들의 진짜 예술 이야기

AC/DC의 위대함에 대하여

by 조범준


AC/DC를 위대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흔히 대중적 성공이나 판매량의 문제로 환원된다. 물론 그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밴드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수치는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니다. AC/DC의 진정한 위대함은 그들이 무엇을 새롭게 만들었는가에 있지 않고, 무엇을 끝내 벗어나지 않았는가에 있다.


이 밴드는 수십 년간 라이브 무대에서 단 한 번도 음악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 편곡도, 흐름도, 심지어 긴장과 해소의 위치까지도 앨범에 기록된 그대로 반복된다. 현대 예술의 관점에서 이는 종종 정체나 고갈로 오해된다. 그러나 AC/DC의 반복은 창작의 실패가 아니라, 본질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다. 그들의 음악은 변화하지 않음으로써 죽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 속에서 점점 더 단단해졌다. 이는 반복이 소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행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AC/DC의 음악은 어렵지 않다. 복잡한 화성도, 난해한 구조도, 해석을 요구하는 상징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악은 쉽게 소비되지 않는다. 단조롭다는 인상과 달리,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이유는 이 음악이 인간의 사고를 겨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개념을 통해 감각에 도달하지 않고, 감각 이전의 층위에서 곧장 인간을 붙잡는다. 그 지점에서 이들의 음악은 취향이나 교양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이 공유하는 직관의 문제로 이동한다.


이 밴드의 구성 또한 철저히 본능적 질서를 따른다. 주연과 조연의 구분은 명확하며, 누구도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는다. 주연은 끝까지 주연의 역할 안에서만 움직이고, 조연은 말없이 구조를 떠받친다. 이 분업은 전략이 아니라 자연에 가깝다.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기능을 과잉 없이 수행할 때, 전체는 가장 안정적인 형태를 띤다. 이는 현대 예술이 종종 해체해버린 위계가, 사실은 억압이 아니라 질서일 수 있음을 드러낸다.


외형적 측면에서도 AC/DC는 현대적 미의 기준과 거의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들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정제되지 않으며, 표정과 몸짓은 연출되기보다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현대 대중음악, 특히 아이돌 문화가 인간의 표정과 동작, 심지어 감정의 흐름까지도 계산하고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면, AC/DC는 그 모든 개입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 거부는 반항이 아니라 무관심에 가깝다. 그들은 애초에 정제되어야 할 영역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주의 기술과 사운드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톤은 시대를 초월해 고전처럼 남아 있으며, 특정 유행이나 기술적 과시에 기대지 않는다. 그것은 진보의 결과라기보다, 이미 완결된 형식에 가깝다. 그래서 AC/DC의 음악은 늙지 않는다. 늙는 것은 시대의 언어를 빌린 음악이지, 본능의 언어를 사용하는 음악이 아니다.


결국 AC/DC는 가장 본능적인 이데아의 영역에 도달해 있는 밴드다. 그 지점에서는 더 나아갈 필요도 없고, 덜어낼 것도 없으며, 새롭게 꾸밀 이유도 사라진다. 변해야 할 것은 아직 본질에 도달하지 못한 것들이며, 정제란 언제나 불완전함을 전제로 한다. AC/DC에게 변화와 정제는 발전의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을 훼손할 위험이다.


그들이 수십 년간 같은 음악을 반복하면서도 조금도 낡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아직도 어딘가를 향해 가는 중이 아니라, 이미 도착해 있기 때문이다. 본능의 이데아에 도달한 음악은 진화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르며 인간을 다시 그 원점으로 되돌려 놓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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