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쇼펜하우어의 책들이 많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처럼 국내 작가가 임의로 ‘쇼펜하우어적 철학’을 차용해 쓴 책들이 아니라, 이 책은 진짜 쇼펜하우어의 논문이다. 에세이나 잠언서의 형식도 아니다. 논문 특유의 난해한 문장 구조, 번역한 자신도 모를것 같은 오묘한 번역들의 장벽, 익숙한 단어를 전혀 다른 의미로 재정의해버리는 개념들. 더구나 칸트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접근 자체가 어렵고,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를 읽지 않았다면 더더욱 길을 잃게 된다.
누구나 제목은 알지만, 완독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들 말하는 책,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한 달 내내 붙들고 결국 끝까지 읽어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수시로 다시 펼쳐야 했고, 문장 하나하나와 씨름하며 개념을 공부해야 했다. “하루에 한 페이지라도 읽자”는 각오로 버텼고, 그 결과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개가 무량하다.
시대가 갈수록 자아를 비우고,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추라고 요구할수록, 우리는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더욱 견고히 해야 한다. 시간의 순서는 다소 뒤틀려 있었지만, 니체로 시작해서 여러 국내 철학서들, 야스퍼스와 동양 철학을 거쳐 결국 칸트와 쇼펜하우어에 이르렀다. 이 과정들이 꼭 고루한 취미의 영역으로만 치부하기엔 지금 우리둘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을 선물 받은 과정이기도 하기에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기도 하다.
이 책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고 길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책은 내 인생을, 아니 ‘나라는 인간의 사고 구조’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어쩌면 AI 시대에 더욱 필요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사고 체계를 정확히 이해할수록, AI를 어떤 방식과 위치에서 사용해야 할지도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이 책의 1·2권에서 시대를 초월한 사고의 체계를 제시한다. 그 구조는 너무나 명쾌하고, 담대하며, 분명해서 반박의 여지를 찾기 어렵다. 이해하고 나면 놀랄 만큼 단순하게,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형태로 사고 속에 남는다.
이 책은 말하지 않는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라.” “삶의 지혜란 이것이다.” 그저 인간의 사고를 해부하듯 분석하고 나열할 뿐이다.
쇼펜하우어의 가징 특이한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삶은 고통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형이상학적 진술이지, 단언이아니다. 그 고통을 벗어나는 방법은 이데아적 관조의 순간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처방이 아니다. 그저 우리에게 고통과 해방의 순간에 대해서 설명할 뿐이다.
어쩌면 쇼펜하우어가 우리에게 남기고 싶었던 것은 삶에 대한 조언이나 확언, 혹은 그에대한 차방이 아니라, 삶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있는 하나의 시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