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매미만 이름으로 '맴맴' 울어?
# 9
윤영과 남선은 미리 약속한 듯 매일 같은 시간 흡연장에서 만났다. 인근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윤영은 보충 수업까지 끝내고 오면 남선과 퇴근 시간이 얼추 맞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물 다섯의 동갑내기였고, 매일같이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너나들이하는 사이가 됐다. 아파트 단지 내 흡연자가 많지 않아 적적했던 흡연장에 소소히 생기가 돌았다.
“있잖아 남선아, 고양이는 ’야옹‘, 강아지는 ’멍멍‘, 돼지는 ’꿀꿀‘ 그러는데, 왜 매미만 이름으로 ’맴맴‘하고 우는 걸까?”
“그러게? 태어나서 한 번도 생각 해본 적 없네. 그냥 매미만 우는 소리를 따서 ’매미‘라고 지은 게 아닐까? 그나저나 지난 여름 한참을 시끄럽게 '맴맴' 울더니, 이젠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네.”
“그럼 매미는 엄청 특별한 녀석이네.”
“그렇네. 근데 보통 사람들이 매미 되게 싫어하잖아. 근데 난 매미만은 싫어하면 안 될 것 같아. 시끄럽긴 해도 몇 년을 땅속에서 유충으로 지내다가 겨우 나와서는 몇 주 울다가 죽잖아. 불쌍하다는 생각도 해.”
“우리 시선으로 보면 불행해 보일 수 있지만, 매미 자신은 그래도 행복한 생애였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겨우 몇 주 울지만 오래 참고 준비해서 결국 꽃을 피우는 거니까. 나는 매미가 불쌍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
남선은 윤영이 하는 생각이 자신보다 훨씬 시인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국어 과목을 따분하다고 생각했던 그녀었지만, 그는 윤영만 보면 천진난만한 동시가 떠올랐다. 남선은 윤영과 이야기하면 할수록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질 따름이었다.
# 10
”아 맞다, 너 내일 토요일인데도 일 한다며?“
윤영이 의아하다는 듯 남선에게 물었다.
“응. 그래도 주간이라 저녁 6시에 퇴근해.“
“그래도 힘들겠다. 주말인데 놀지도 못하겠네.”
”괜찮아, 나 이 동네엔 놀 친구도 없어. 딱히 주말이라고 해서 할 것도 없고.“
”너도 발령받아서 타지로 떠난 케이스지? 나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그들은 모두 강원도 철원에서 일하고 있다. 억지로 발령받아 온 건 아니지만, 철원에 연고지가 없다 보니 이따금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그래도 놀고싶긴 해 …. 경찰 일이 싫은 건 아니지만, 가끔 확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있어.“
”그래? 그럼 잠깐이라도 다녀오면 되지. 어디 가고 싶은데?”
”그러게. 그냥 여기서 아주 먼 곳 아무데나?“
"강원도에서 먼 곳 …, 전라남도 여수? 바다 보러 가면 되겠네, 장범준 노래 들으면서. 내일 6시에 일 끝나면 바로 출발하는 거야. 어때?"
남선은 윤영이 어린 아이같다고 생각했다. 다만 미성숙의 의미가 아닌, 자유의 의미에서 그렇다. 남선의 시선에서 윤영은 언제나 순수했지만, 바보같진 않았다. 그는 그런 윤영이 좋았다.
"에이, 거길 어떻게 가. 왕복 9시간 즈음 될 걸."
"내가 운전하면 되지, 너는 퇴근 후라 피곤할 거 아니야."
"아. 너도 같이 가는 거야?"
"당연하지, 나도 바다 보고 싶은걸. 너 퇴근 하자마자 아파트 앞에서 보는 걸로 하자."
”알겠어. 그럼 그때 봐.“
11 #
이토록 퇴근 시간이 기다려지다니, 남선은 뚫어질듯 시계만 쳐다봤다. 이윽고 시침이 퇴근 시간을 가리키자 마자 그는 부리나케 아파트로 향했다.
“엄청 빨리 왔네? 내가 운전할게 얼른 가자.“
”그럼 돌아올 땐 내가 할게.“
“바보야. 나 운전 엄청 잘해. 걱정 말고 넌 차에서 잠이나 자.”
12 #
한가을 밤바다의 상쾌한 바람이 그들의 몸을 적셨다. 11시가 넘는 시간임에도 밤바다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럼에도 철원에서 장정 네시간 반을 달려 여수에 온 사람은 그들 뿐이리라. 남선은 여수에서의 특별한 추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나, 스무 살 때 여기 혼자 온 적이 있거든? 그때도 오늘처럼 갑자기 떠나고 싶어서 바로 기차 예매하고 당일치기로 다녀왔단 말이지. 그때 밤 되기 전까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일부러 바다를 안 봤어. 처음 보는 광경이 밤바다였으면 했거든.”
“역시 시인은 다르네. 그럼 바다 보기 전까지 뭐 했는데?”
“점심으로 이순신 광장에서 이순신 햄버거 먹고, 옷가게 들러서 새옷으로 갈아입은 다음에 바다 보러 갈 준비 했지. 근데 거기 옷가게 사장님이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자기는 젊었을 때 자유롭게 살지 못한 게 한이래.”
“진짜? 근데 그걸 갑자기 너한테 왜 얘기했대?”
“내가 여수에 혼자 여행왔다고 얘기했거든. 사장님은 부모 뜻대로만 인생을 살아오다가 최근에서야 반항하기 시작했대. 어렸을 때부터 옷가게 차리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서야 그 꿈을 이뤘다면서 너무 행복하다고 하더라. 자기는 내가 혼자서 많이 여행도 많이 다니는 자유로운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어. 그래서 그 말 듣고 그래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혼자 여행 간 적이 없네. 잊고 지냈는데 오랜만에 여수 오니까 생각났어.”
”그래도 늦게나마 꿈을 이뤄서 다행이네. 너도 지금이라도 여행 많이 다녀. 집순이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야."
13 #
그들은 정처없이 밤바다를 거닐었다. 바다를 한참 바라보던 윤영이 남선에게 말했다.
"자연은 정말 신기한 것 같아."
"왜?"
"이 바다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이 아득히 오랜 시간을 그저 파도치며 여기에 있었다는 거잖아.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우리가 죽어서도 바다는 이곳에 영원히 존재할 거야."
"그치, 해가 그렇고 달이 그러하듯 바다도 영원하겠지. 인간이 멸종한 이후에도 천문학적인 시간을 들여 이곳을 지킬 거야. 자연 앞에 인간은 정말 작디 작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파도가 일고 있잖아. 저 물결을 봐. 아무리 파도친다 하더라도 그 물결의 모양이 완벽히 겹치는 일은 없을 거야."
"윤영이 너는 뭐랄까. 똑같은 걸 봐도 남들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아. 좋은 의미로."
"그래? 에이. 시인인 너만 하겠어."
"나랑은 비교할 수 없어 …. 그래서 네가 좋아. 나보다 더 시적인 삶을 사는 것만 같은 네가. 널 사랑해 뼈에 사무치도록."
남선은 자신보다 시인에 가까운 윤영에게 사랑에 빠졌고, 윤영은 남선이 외우던 짧은 시 하나로 그를 사랑하게 됐다. 한가을의 밤바다엔 무수한 파도가 쳤고, 그렇게 그들은 연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