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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 J Jul 27. 2023

해고, 그 이후 - 그래서 결혼은?

실리콘 밸리에서 살아남기 #3

상견례 자리에 들어가며, 나와 H는 결혼식에 대한 어떠한 결정도 그 자리에서는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부모님이 답이 정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의견을 표시하면 무조건 생각해 보겠다며 넘어가자고 얘기했다. 이유인즉슨, 너무 많은 사공 (부모님들 + 우리들) 들이 있고, 그런 상황 속에서 당연히 배가 산으로 가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나 분위기가 무거울 상견례 자리에서 민감한 얘기를 하면 그 끝이 좋게 끝나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았다.


이런 생각을 부모님께도 얘기하고 그렇게 이끌어 달라고 적극 권장하였는데, 부모님 두 분 다 뭐가 그리 걱정이냐며 걱정 말라고 하시더니 당일 아침 차 안에서는 그 전날 상견례 관련 영상과 블로그 글을 찾아본다고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다고 얘기하셨다 ㅋㅋ... 두 분도 결혼을 시키는 건 처음이고, 옆에서 얘기는 많이 들었지, 직접 부모로서 참여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많이 떨리셨던 것 같다.


그렇게 다들 긴장 200% 하며 상견례에 들어갔다. 내가 이때까지 본 부모님의 모습 중 가장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장인어른은 조용하신 성격이고 장모님은 관계에 있어 호불호가 확실하신 성격이셔서 좋은 게 좋은 거라 단순하게 생각하려는 나의 부모님과 잘 어울리실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생각 외로 두 가정의 부모님들이 60년 내공으로 어색하지만 격려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셨고, 모두가 우리의 하나 됨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시는 게 느껴졌다.


우려와는 달리 성공적으로 상견례를 마치고 난 뒤, 난 부모님께 해고에 대해 털어놔야겠다 싶어서 바로 옆 건물 카페로 부모님을 이끌었다.


해고 얘기를 들은 부모님의 반응은 두 가지였는데, 걱정이 평소에도 많은 엄마는 "한국과 달리 쉽게 자른다더니 이렇게 하루아침에 해고당할 수 있냐, 어떡하냐"며 벙찌셨고 아빠는 사태의 심각성을 나에게 여쭤보시고 판단을 내리시길, "취직이야 언제든 준비해서 할 수 있는 거고 중요한 결혼식이 곧 있으니 먼저 결혼식을 잘 마무리하고 취직모드로 들어가자" 면서 굉장히 긍정적으로 얘기해 주셨다. 나도 아빠의 의견에 동의를 했기에 이 사태의 심각성에 집중하기보다는 이 사태를 원만하게 H의 가족에게 전달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기로 하고 얘기를 마쳤다.


전체적으로 부모님이 비관적이지 않고, 삶 속에서 겪을 수 있는 일을 내가 겪고 있구나 정도로 받아주시고 있음에 너무나도 감사했다. 나의 뒤에는 자신들이 강하게 버티고 서 있을 테니 앞날을 걱정하지 말고 H에게 오해 없이 잘 전달할 수 있기를 기도하겠다며 얘기해 주시는데 정말 마음이 든든했다.


고민 끝에 해고 얘기는 한국일정이 끝난 이후 공항에서 H 얼굴을 보며 얘기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짧은 기간 동안 다른 한국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야 하는 우리였기에 그 무드에 크게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고, 먼저 H에게 얘기를 하고 난 이후 H와 계획적으로 H의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게 세이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서 얘기를 들은 H는 처음엔 놀란 듯 한 표정을 보였지만 이내 다시 평정심을 찾았고, 오히려 별일 아닌 듯 "다시 구직하면 되지 뭐" 하며 넘기려고 했다. 난 생각보다 담담한 H에 놀랐지만, 마음 한편엔 분명 H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을 떨림과 불안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앞으로 그런 힘듦이 보일 때 자신감을 보여주며 잘 다독여줘야겠다 마음먹었다.


때가 되어 H를 통해 장인, 장모님께도 말씀드렸는데, 두 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외에는 잘 준비해서 구직해 보자는 얘기를 해주시며 잘 넘겨주셨다. 나중에는 해고 소식이 굉장히 당황스러운 상황이긴 한 거 같다며 얘기를 하셨지만 (누군가로부터 사위가 무얼 하냐 물어올 때 취준생이라고 차마 얘기를 못해 IT 업계에서 일한다고 얼버무리셨다고...ㅜ) 그 외 딱히 그 포인트를 가지고 얘기를 더 하시진 않으셨다.


상견례와 해고 소식은 원래 계획했던 결혼식 (5월) 9개월 전에 있었다. 나의 해고는 결혼식 6개월 전 (11월)에 있을 예정이었다. 그러다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결혼식을 5개월 (12월로) 앞당겨야 했는데, 돌이켜 보면 당시 내가 일하고 있지 않아서 이래저래 도움이 된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결혼식은 모두의 축복 속에 성공적으로 마쳤고, 우린 한국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미리 봐둔 같이 살 아파트로 이사를 마무리하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인터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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