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29 멜랑콜리했던 에트르타
옹플뢰르까지 온 김에 북쪽으로 좀 더 가보기로 했다. 그곳엔 에트르타(Étretat)라는 지역이 있다. 클로드 모네가 사랑했던 그 코끼리 바위가 있는 곳이다. 그 절벽이 곧 내 눈 앞에 펼쳐질 상상을 하니 가속페달 위에 얹어 놓은 오른발이 덩달아 들떴다. 밖은 안개가 낮게 깔린 채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밖 풍경은 점점 푸른 회색빛으로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순간 앞이 탁 트였다. 길의 끝은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비가 와서였을까? 바다와 파도가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는 또렷하고 선명하게 웅장했다. 인간은 비교도 안 되는 자연의 거대하고 원시적인 힘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파도는 자갈과 절벽을 쉴 새 없이 때려댔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 저 힘은 멈추지 않으리라. 석회암으로 이뤄진 에트르타의 절벽은 수백만 년간 이 풍화가 조각해 낸 작품이다. 프랑스 지질학자들도 이곳의 절벽을 예술적으로 손꼽는다.
가장 유명한 건 아무래도 ‘아르크(Arche)’라고 하는 커다란 바위 아치다. 이는 어렴풋이 코끼리 코를 닮아 ‘La Porte d’Aval’이라고도 한다. 보고 있으면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몽환적인 분위기에 매료된다. 분명 저 아치 아래 신비로운 부족이 살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오키나와의 만좌모(万座毛)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코끼리 바위도 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풍기는 아우라가 다르다. 이러니까 모네와 들라크루아, 쿠르베 같은 화가들이 빠져든 것이다. 왜 모네가 여기에 죽치고 앉아 계절별로 이 풍경을 그려댔는지 알 것 같았다.
에트르타는 비단 화가들의 것만은 아니다. 소설가 모리스 르블랑은 『아르센 뤼팽; 바위 속의 비밀』의 배경을 이곳으로 삼았다. 그 역시 저 코끼리 코 바위를 보며 분명히 저기 어딘가에 뭔가 신비스러운 공간이나 동굴이 있을 것으로 상상했나 보다. 그 상상은 프랑스 독자들을 흥분시켰고, 지금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굴을 찾으려는 팬들이 간혹 온다고 한다.
절벽의 표면은 켜켜이 쌓이고 지내온 지난 세월을 드러낸다. 블랙앤화이트 톤의 줄무늬는 이 땅이 바다 밑에 있을 때 퇴적된 생명들의 흔적이자 지구의 기억이다. 지금은 그 위로 싱그러운 풀이 자라나고 있다. 그 위를 우리는 걷고 있다.
에트르타 주민 말로는 이곳은 일기예보가 별 소용이 없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 들었던 말과 같다.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 햇살이 났다가도 얼마 안 가 구름이 온 동네를 뒤덮는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바다도 하늘과 장단을 맞춰 옷을 갈아입는다.
이날은 유독 흐렸다. 저 멀리 바다와 하늘의 경계도 모호했다. 정확히 몇 시인지도 분간이 안 됐다. 위스키 같은 것들이 생각났다. 바람과 파도가 연주하는 오디오와 함께 마시면 취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진탕 마시고 그냥 하루 자고 갈까?’ 몇 번이나 요동쳤는지 모른다. 이날의 불완전하고 초현실적인 잿빛에 더 머무르고 싶었다. 윌리엄 터너의 그림 속 주인공이 된 듯했다.
풍경만으로 기분은 급속도로 멜랑콜리(Melancholy)해졌다. 고대 그리스 의학에서는 인간의 성격이 네 가지 액 때문에 결정된다고 했는데, 그중에서 흑담즙이 많으면 나타나는 기질이 바로 우울하고 사색적인, 멜랑콜리라고 했다. 고대 그리스어로 멜랑콜리는 검은 쓸개즙이란 뜻이다. 멜랑콜리는 단순한 우울함이 아니다. 세상을 깊게 바라보고 성찰하는 감정 상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위대한 예술가와 철학자는 모두 멜랑콜리한 성향을 지닌다고 했고, 키르케고르 역시 멜랑콜리를 일컬어 존재의 불안과 의미를 자각하는 인간의 가장 고귀한 감정이라고 평했다. 나는 그때 그러했던 그 감정을 마음껏 즐겼다.
이 와중에 서퍼들은 진심이었다. 오히려 이 거센 파도를 더 즐기는 듯 보였다. 실제로 이곳은 프랑스의 서퍼스 파라다이스다. 크고 거친 파도가 지속적으로 들어와 서퍼들이 겨울에도 많이 찾는다. 원시적인 이 풍경에 서퍼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점묘화가 기가 막히게 이질적으로 어울렸다.
해변을 걷다 재밌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PICKING UP PEBBLES IS FORBIDDEN!’ 자갈을 가져가지 마시오. 그러고 보니 자갈들이 모두 보석처럼 반질반질해 꼭 기념품으로 가져가고 싶게끔 보였다. 가져가지 말라니 더 가져가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지만, 교양 있는 한국인 여행자로서 만져만 보고 내려놓았다. 이렇게 반들반들해지기까지 여기에서 얼마나 파도의 채찍을 맞았던가. 귀엽다고 하나씩 가져가기 시작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도 싫다. 여기 관광 안내소에 따르면 에트르타에는 연간 100~15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고 한다. 이곳 마을 인구가 약 1,200명 정도인 걸 보면 상당한 규모다.
저 멀리 절벽 위를 올려다보니 노트르담 드 라 갈레(Notre-Dame de la Garde) 교회가 보였다. 순간 제주 서귀포시의 ‘올인하우스’ 성당 세트장이 생각났지만, 생김새는 완전히 다르다. 앙증맞은 예배당이면서 동시에 등대 역할도 해 어부들의 수호신 같은 존재다. 옆에 전망대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절벽과 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비만 오지 않았어도 천천히 걸어서 다녀왔을 텐데. 어느 화창한 날에 다시 오리라 다짐하고 파리로 다시 운전대를 돌렸다. 내일이면 이제 집에 가야 했다.
Nov,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