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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몬데 우짤 끼고

가족의 의미를 잇다

by 한봄소리
부몬데 우짤 끼고


부모님이 어린 시절부터 맞벌이로 장사를 하셨던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자연스레 서로 대화를 하는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고, 지금도 서먹합니다. 부엌 식탁 위에 올려진 딸기가 말없이 표현하려고 했던 부모님 마음이라는 것을 이제 이해하면서도, 저에 대한 걱정을 언급하실 때마다 저는 반사적으로 화가 납니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크면서 점점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느껴졌습니다. 가치관도 서로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서로 다릅니다. 부모 자식의 관계는 혈연으로 이어졌다지만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좋아도 싫어도 가족은 가족입니다.



이혜란 작가님의 그림책 <우리 가족입니다>는 작가 개인의 가족사를 담은 책입니다. 엄마, 아빠, 나, 동생 네 식구가 신흥반점이라는 중국집 식당에서 사는 어느 날 정신이 온전치 않은 할머니가 같이 살게 됩니다. <우리 가족입니다>에서 나오는 내용들은 사실 불편한 일상들이 대부분입니다. 할머니가 일을 저지르면, 엄마나 아빠가 뒤처리를 하기에 바쁘죠. 주인공 소녀의 입장에서 묘사되는 상황은 소녀의 할머니에 대한 꾸지람에 대한 목소리와, 말없이 묵묵하게 뒤처리를 하는 부모님의 행동과 대조되면서 긴장되는 상황이 계속됩니다. 조금씩 할머니가 가족의 일원이 되어 가는 과정, 가족에 대한 사랑보다 책임과 인내가 더 필요한 현실의 어려움, 서로 이해하고 도우며 성장하는 과정들이 책 안에 담겨있습니다.



가족사는 개인의 성장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만, 사적이고 내적인 부분에 속합니다. 특히 불편한 이야기일수록 더 꺼내기 어렵습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이 오롯이 녹아져 있는 <우리 가족입니다>를 통해 가족이었지만 힘들었고, 부끄럽고, 어려웠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일상에서 마주했던 욱한 감정들이 책 속 소녀의 종알거림과 비슷합니다. 예전 우리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점도 이 책의 재미입니다. 큰 고무 대야에 목욕을 하는 모습, 한 방에 모든 식구들이 다 같이 모여 자던 모습들.. 저는 옛 풍경이라고 인지하지만,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새로운 풍경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아무렇게나 옷을 벗는 할머니의 주름 많고 살찐 볼품없는 상반신의 모습에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잊고 있던 엄마의 품이 떠 올랐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은 소녀가 아빠를 업으려고 하며 "아빠, 나 또 일 센티 컸다!"를 얘기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다부진 표정의 소녀의 표정을 통해 신체적 성장뿐만 아니라 마음의 성숙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아빠와 딸의 장난처럼 보이지만 이미 소녀는 할머니를 비롯하여 아빠 엄마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됐음을 말이 없어도 그 행동으로 어렴풋하게 느껴집니다. 소녀 등위에 업힌 아버지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딸이 다칠까 봐 두려운 건지 더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갖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소녀의 힘 찬 도전처럼, 일 센티 컸다는 말처럼, 책을 읽는 나 또한 가족과 함께 성장해왔음을 느낍니다.


뒷집 준범이


<우리 가족입니다>의 소녀 주인공, 신흥반점 강희의 두 번째 이야기로 <뒷집 준범이>가 있습니다. 이 책 또한 작가의 옛 친구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뒷집 준범이> 책의 뒷 표지에 <우리 가족입니다>의 신흥반점이 보입니다. 작가가 서로 다른 그림책에 숨겨놓은 연계성을 찾는 것도 아는 사람만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준범이는 신흥 반점 뒷집 작은 창이 있는 방에서 할머니와 사는 소년입니다. 할머니로부터 밖에서 나가지 말라고 당부를 들은 준범이는 창을 통해서만 세상을 봅니다. 낮에도 빛이 잘 안 들어오는 작은 방은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방의 삶을 떠오릅니다. 창밖으로 동네 아이들과 가족을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준범이가 방에서 나오는 걸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고는 직접 준범이네로 찾아가서 함께 놉니다. 시끄러운 앞집 아이들, 그래도 좋은 준범이.

"다 같이 놀면 진짜 재미있거든요."


<우리 가족입니다>가 평범한 4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었으면, 부모님이 없이 할머니와 지내는 준범이의 이야기를 통해 <뒷집 준범이>는 가족에서 친구로 공동체의 소중한 기억을 확장해 나갑니다. 히키코모리, 집단 따돌림 등의 사회적 이슈가 많은 요즘 동네 아이들끼리 모두 친구가 되어 다 같이 노는 일상이 소중한 기억으로 다가옵니다. <뒷집 준범이>를 보며 가난하면 불행하다는 명제는 어른들의 편입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지내지만 남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지 않습니다. 그저 다 함께 놀면 똑같이 즐거울 뿐입니다. 이 책에서 빛과 그림자의 표현 또한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작은 창을 통해서만 빛이 들어오는 준범이의 방을 대비되는 빛과 어둠의 연출로 생생한 공간감이 느껴집니다. 언제 어디서나 들으면 반가울 것 같은 이 소리, 저도 외쳐봅니다.


"준범아, 노올자"



이혜란 작가님의 <우리 가족입니다>, <뒷집 준범이>는 작가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기반으로 7-80년대의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을 담은 점에서 굉장히 비슷합니다. 불편한 리얼리즘을 따뜻한 감동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이 두 책의 매력이고요.


짜장면 더 주세요!


신흥반점의 강희가 나오는 책이 한 권 더 있습니다. <짜장면 더 주세요!>는 사계절 출판사의 다양한 직업을 소개하는 '일과 사람'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중국집 요리사를 다룬 <짜장면 더 주세요!>에서는 재료를 구매하고, 부엌에서 요리하는 풍경들,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짜장면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짜장면 한 그릇을 위해 담겨있는 그릇 밖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풀어갑니다. 지식 전달 중심이다 보니 설명글도 스토리 그림책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고 책장을 넘기며 시종일관 시끌시끌 보글보글한 소리가 들려오듯 청각적 효과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아래 왼쪽의 그림은 <짜장면 더 주세요!>에 나오는 신흥반점의 모습입니다. 이전에 소개한 두 작품에서와는 또 다른 느낌이죠? :) 책의 맨 마지막 장에는 중국집 주방장이었던 작가의 아빠 손이 그려져 있습니다. "달콤하고 고소하고 짭조름한 우리 아빠 손 냄새. 일하는 사람의 손 냄새"로 마무리되는 책을 덮으며, 중국집 요리사의 일상의 소개 그 너머 언제나 일하고 있던 우리 아빠들의 뜨거운 삶의 진정성과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이혜란 작가님의 그림책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일흔이 넘은 아직도 일을 놓지 않고 있는 아빠가 생각납니다. 검게 그을린 얼굴, 깊은 주름, 거친 손과 발 그런 까슬까슬한 아빠는 평생 나무와 함께 일을 하셨던 것만큼 나무와 닮았습니다. <짜장면 더 주세요!>를 볼 때마다 치명적인 짜장면의 유혹! 나무젓가락으로 짜장면을 그려봅니다.


여러분이 기억하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은 어떤가요? 마음속에서 그려볼 수 있을까요? 짜장면 한 그릇과 함께 가족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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