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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분노의 감정을 잇다

by 한봄소리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 '화난다'라는 느낌이 들면 무엇이든지 부술 수 있고, 누가 덤벼도 천하무적일 것 같은 에너지가 쏟아 올랐습니다. 갑자기 생성된 이 감당 못하는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넓은 운동장을 달리는 것이었죠. 지금은 분노라는 감정이 오히려 나의 정신과 신체를 지치게 만들어 화를 내너라도 금방 후회하는 편이고, 감정을 잊기 위해 오히려 잠을 청하는 편입니다. 그러고 보면 똑같은 감정인데도 어린 시절과 성인이 된 나의 표현에 대한 방법이 많이 다릅니다. 몰리 뱅의 작가님의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려 봅니다.


몰리 뱅 작가님의 '소피'시리즈는 총 3권이 있습니다.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소피가 속상하면 정말 정말 속상하면', '소피가 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국내에서는 '소피는 할 수 있어, 정말 정말 할 수 있어'로 출판)입니다. 시무룩하고 뾰로통한 얼굴에서 단단히 무언가로 인해 뿔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분노, 절망, 무기력함.. 모두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들입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하지 말아야 하고, 감춰야 하는 것으로 배웁니다. 화내지 마, 슬퍼하지 마. 하지만 감정을 억압하는 명령에만 익숙할 뿐, 이미 나도 모르게 나타난 이 감정을 어떻게 해소하고 풀어야 할지 누군가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조금씩 발견을 해 나가야 하죠. 감정에 대한 프로젝트를 예전에 진행하면서 공포,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발달된 감정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부정적'이라는 말 조차도 편입견 같습니다. 사람은 그저 다양한 감정을 갖고 있을 뿐이고, 슬픔과 화 또한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죠.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은 언니가 자신의 장난감을 뺏으려고 해서 넘어진 소피가 진짜 화가 나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붉은색의 거대한 그림자, 불꽃과 같은 시뻘건 소리, 막 터져 오르는 화산 같은 마음... 감정이 그림을 만났을 때, 현실에서 보이는 것 이상의 상상이 오히려 더 실제적 감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면을 꽉 채우는 소피의 얼굴, 거대한 크기의 의성어로 표현되는 소피의 감정에 함께 압도됩니다. 화가 난 소피는 늙은 너도밤나무 위에 올라가 산들바람을 느끼고, 바다를 바라보며 분노의 감정을 잊습니다. 화내면 안 된다는 교훈적인 메시지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하고 상쇄시키는 소피를 보며 나 또한 시원해지는 느낌을 얻습니다.



강렬한 색채의 그림이 보여주는 익살스러운 재미와 더불어 분노의 감정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시간이 흘르며 상쇄되는 과정을 보며, 감정은 억지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의 후속작 <소피가 속상하면, 정말 정말 속상하면>에서 소피는 자신이 그린 나무가 파랗다고 놀리는 친구들 때문에 속상해합니다. 이 책에서는 '속상함'이라는 감정보다는 서로 다른 표현 방식을 이해하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나무를 그릴 때 실제 보이는 데로 회색으로 칠하니 원래 나무의 생생함이 느껴지지 않아서 소피는 파란색으로 색칠을 합니다. 다른 친구들도 다양하게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나무를 표현합니다.


'잘 그린 그림'과 '못 그린 그림'이 어떻게 구분된다고 생각하세요? 현실적인 묘사를 잘 재현한 그림을 일반적으로 잘 그렸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림은 '잘'그리고 '못'그리고의 구분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취향과 감정, 작가의 의도가 어우러져 다양한 개성이 공존하는 세계가 그림입니다.


몰리 뱅의 그림책에는 캐릭터마다 테두리선이 명확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빨간색, 주황색, 보라색 등 배경에서 형형색색으로 도드라지게 하는 테두리의 색 또한 캐릭터의 감정적 상태를 묘사하는 방법으로 사용됩니다.



그 밖의 몰리 뱅의 그림책 중에 제가 좋아하는 책은 새로운 관점에서의 유쾌함이 있는 <The Grey Lady and the Strawberry Snatcher (할머니와 딸기 도둑)>입니다. 글 없이 그림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상상을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열려있지요. 하얀 할머니가 그림자처럼 숲속을 통과하는 모습이 마법과 같이 느껴집니다.



문득 화나고 속상한 마음을 토하는 방법으로 예술 활동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쓸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를 수도 있겠죠.


여러분들은 화가 나면 어떻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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