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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구조는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원리를 잇다

by 한봄소리
그림 혹은 모든 시각예술 형상의 구조는
우리의 감정적 반응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몰리 뱅의 그림 수업>은 책을 보기 전까지는 몰리 뱅의 그림책을 그리는 과정에 대한 소개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개인의 작업 과정을 넘어서 시각적 구조가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큰 담론에 대해 작가가 학술적으로 탐구했고, 이를 추상적 패턴의 변이를 통해 쉽게 설명하는 책입니다. 그림은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세밀한 내용 하나하나의 변형이 다 가능하고, 이에 따라 수많은 변주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고민과 실험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항상 책의 결과물을 봅니다. 하지만 책을 만들기 위한 과정안에서 수많은 고민이야말로 진정한 숨겨진 가치가 아닐까요. 그런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 <몰리 뱅의 그림 수업>입니다.



하기 이미지는 <빨간 모자 소녀와 늑대> 이야기를 구성해본 장면이에요. 작은 삼각형이 소녀이고, 숲은 수직의 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형태의 크기와 배치, 구성에 대해 몰리 뱅은 왜 그렇게 느끼는지에 대한 감정에 포커싱 합니다. 그림이 더 무시무시하게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늑대가 출연하기 전에도 무시무시하게 느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숲이 더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는? 늑대는 어떤 색과 모양을 줘야 더 무섭게 보일까? 사고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는 그림 구조 안에서 조금씩 더 감정에 가깝게 정리가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몰리 뱅이 설명하고 있는 그림의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매끄럽고 평평하고 수평적인 형태는 안정감과 평온과 느낌을 준다.


2. 수직적인 형태는 더 활기차고 더 활동적이며, 지구의 중력에 저항한다. 또한 수직적인 형태는 에너지를 의미하며, 높은 곳이나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암시한다.


3. 사선 형태는 동작이나 긴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역동적이다


4. 그림의 위쪽 절반은 자유와 행복, 힘의 자리다. 위쪽 절반에 배치된 대상은 더 '정신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림의 아래쪽은 더 위태롭고, 힘겹고, 애처롭고, 억눌린 것으로 느껴진다. 그림의 아래쪽에 놓인 대상은 더 '단단히 붙박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화면의 더 높은 곳에 위치한 대상이 '그림에서 더 큰 중요성'을 갖는다. 이 원리들을 하나씩 개별로 사용해서는 안되고 항상 함께 결합해서 어떤 맥락 속에서 사용해야 한다.


5. 화면의 중심은 가장 효과적인 '관심의 중심'이다. 그것은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지점이다. 그림의 가장자리와 모서리는 그림 세계의 가장자리와 모서리다.


6. 낮에는 잘 볼 수 있지만 밤에는 잘 볼 수 없기 때문에 흰색이나 밝은 배경은 어두운 배경보다 안전하게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맥락 때문에 모든 규칙에 예외가 있다.


7. 뾰족한 형태를 보면 두려움을 더 많이 느낀다. 둥근 형태나 곡선을 볼 때는 더 안전하거나 더 편안하다고 느낀다.


8. 그림 속의 대상은 클수록 더 강하게 느껴진다.


9. 우리는 같거나 비슷한 형태보다 같거나 비슷한 색을 훨씬 더 강하게 연관시킨다.


10. 규칙성과 불규칙성, 그 둘의 혼합은 강력하다.


11. 우리는 대비를 인식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는 대비 덕분에 볼 수 있다.


12. 그림에서의 움직임과 의미는 형태 자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 못지않게 형태 사이의 공간에 의해 결정된다.


이에 대한 연습을 책 뒤편에 소개하고 있는데, 이를 색종이를 갖고 오려 표현해보았습니다. 제가 연습해본 주제는 '희생자인 먹이를 공격하고 있는 새 혹은 상어' 였어요.


하기와 같은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고 연습을 시작해봅니다.


-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의 핵심은 무엇일까?
이 상황에서 어떤 특징 요소가 나에게 두려움을 일으킬까? 나는 그 요소를 어떻게 강조할 수 있을까?

-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일으키기 위해 나는 어떤 원리를 이용할 수 있을까?


'두려움'에 대한 요소를 어떻게 강조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진행해본 작업입니다. 위협을 주는 빨간색으로, 부리는 크게 과장해서 그리고 뾰족한 눈으로 먹잇감을 더 날카롭게 바라보는 새를 표현했습니다. 먹잇감은 애벌레를 생각했는데 애벌레가 새를 등지고 있도록 해서 누가 다가오는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만드니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작업을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애벌레가 콩처럼 보인다는 피드백을 주었어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애벌레 형태로 좀 더 다듬었죠. 그리고 강하게 날아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배경에 사선을 통해 역동감을 추가로 표현했습니다.



이 밖에 몰리 뱅이 제안하는 심화 학습은 하기와 같습니다.


1. 특별히 마음에 드는 그림을 선택하고, 구성요소들을 도형과 서너 가지 색만 이용해 추상적인 구성으로 바꾸어 그림의 구조가 어떻게 표현 효과를 발휘하는지 알아보자.

2.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을 표현하라.

3. 한 편 또는 여러 편의 시를 똑같이 서너 가지 색을 이용하되 다른 분위기의 그림으로 표현해 보라.

4. 책 표지나 영화 포스터에 그림을 그려보라. 내가 불러일으키려는 느낌을 강화하려면 글자를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 질문하고 살펴보라.

5. 민담이나 단편소설을 제한된 몇 색만 사용해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대여섯 개의 장면 각각에 알맞은 감정을 생각해내라. 첫 그림과 마지막 그림을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만들어보고 표지도 만들어 보라.


책은 "자, 이제 여러분 차례다."라고 언급하면서 끝납니다. 이론 설명에 그치지 않고, 실습을 해볼 수 있게 가이드해주는 친절함, 그리고 루돌프 아른하임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생각한 이론에 대한 조언을 물어보는 적극성도 인상적이었던 책이었습니다. 그림책 독자와 그림 작가뿐만 아니라 감정과 시각적 표현의 연계성에 대해 궁금하신 분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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