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를 잇다
노래하며 연주하며 투쟁하는 기타 노동자들 이야기
빈 기타 공장에는 어떤 풍경과 소리가 담겨 있을까요?
전진경 작가님의 <빈 공장의 기타 소리>는 인물들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 그리고 다채로운 색깔은 시종일관 시종일관 밝고 명랑합니다. 하지만 내용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해고된 노동자들이 빈 공장에서 투쟁을 하고 있는 내용이 진중하죠.
2012년 해고된 노동자들이 지키고 있는 빈공장에 예술가들이 모입니다. 그리고 비어있는 공장을 점거하는 ‘스쾃(Squat)’ 형식으로 예술작업을 진행합니다. 스쾃이란 버려지거나 빈 공간을 점거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전진경 작가는 문 닫은 기타 공장에 작업실을 만들고 그곳 해고 노동자 아저씨들과 함께 열 달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 후에도 매주 한 번씩 찾아가 그림을 그리고 보드게임을 하는 생활을 합니다.
책과 강의를 통해서 멋진 예술가들을 알게 됐습니다. 사회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예술가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지런해야 하고, 따뜻한 마음도 있어야 하고, 스스로를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해서 아직 고생하고 있습니다.
- 작가 소개 중
예술가와 해고 노동자의 만남, 서로를 이해하고 투쟁과 예술을 계속해 나가는 과정이 따뜻한 힘을 불러일으킵니다. 식사를 같이 하고,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밴드 연습을 하고, 딸의 문자를 보여주는 일상들. 험난하고 기나긴 시간 동안 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던 노동자들의 신념이 손글씨로 꾹꾹 담겨 있습니다.
나는 이 공장에서 24년 동안 기타를 만들었어. 그리고 몇 년이나 빈 공장에서 일자리를 되찾으려고 싸우고 있어. 합하면 30년이 넘는다고. 사람은 누구에게나 명예가 있어. 노동자에게도 명예가 있어. 사장은 그걸 몰라. 함부로 해고하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해. 우리나라 100대 부자에 들면 뭐해? 명예라는 걸 사장은 죽을 때까지 모를 거야. 사람들이 자꾸 이제 그만 하라고 해. 지겹대. 독하대. 가족 생각도 좀 하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미워서 화가 나. 나는 쉬지 않고 증거를 찾고 있어. 공장 문을 닫고 우리를 해고한 게 불법이라는 증거 말이야. 잘못을 알리고 당당하게 일자리를 되찾을 거야.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아. p.28
스스로를 지키면서 꾸준히 살아가는 해고 노동자의 삶은 절망과 두려움의 순간도 많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아저씨들의 모습에 생의 활기와 의미를 느끼고 의미를 찾는 작가의 시선이 해학적인 그림 안에 따뜻하게 담겨있습니다.
이 책의 배경이 된 콜트·콜텍 노동자의 투쟁에 대해 책을 읽기 전에는 잘 몰랐습니다. 해고 노동자의 담담한 현실을 그림책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관련 투쟁 내용이 궁금해져 좀 더 찾아보았습니다.
2007년 7월 경영악화를 이유로 기타를 만드는 콜트·콜텍은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한 뒤 외국으로 공장을 이전합니다. 갑작스럽게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13년 동안 투쟁을 계속합니다. 콜트·콜텍은 한국에서 가장 긴 투쟁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2019년 4월 4464일 만에 콜텍 노사분규의 잠정합의안이 도출되었지만 콜트 노동자들이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콜트·콜텍은 한 회사가 아니고, 콜트는 전자기타, 콜텍은 통기타를 제작하는 서로 다른 회사입니다. 하지만 박영호 대표와 가족 지분이 얽혀있죠. 두 회사의 해고 노동자는 함께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 투쟁을 함께 했습니다. 이러한 콜트·콜텍 노동자 투쟁에 대해서 2012년 스쾃 형식을 통해 진행한 작업 전시에 이어 이후에도 관련 전시회가 몇 차례 열렸습니다.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는 콜트·콜텍 공장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목소리와 시선들에 대해 그림과 책으로 알리는 <빈 공장의 기타 소리>를 통해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곱씹어 봅니다.
맥을 짚 볼까요?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전진경 작가님의 그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책으로 <맥을 짚어 볼까요?>가 있습니다. 한의원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관찰하고 맥을 짚고 침을 놓고 약을 처방하는 한의사 선생님. 실제 한의사를 취재한 내용을 기반으로 구성된 책에는 한가할 때 요가를 하는 한의사 선생님의 일과를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한약의 종류, 몸이 아플 때의 지압 방법 등 한의학과 관련된 알찬 정보도 담겨 있습니다. 물감과 달걀노른자를 섞어서 그려 독특한 색감이 느껴집니다.
나른한 표정과 자신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계신 한의사 선생님에게 자연스럽게 빠져듭니다. 마음을 편안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선생님의 말씀, 다시 한번 마음에 담으며 책장을 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