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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피 Jan 14. 2023

7. 나의 졸작을 읽어 줄, 너

그래 너. 


수업 전에 내가 쓴 글을 읽고 검토해 줄 사람을 찾는 것은 필수였다. 끊임없이 내 작품을 읽고 검토해 줄 사람은, 괜히 만만한 남자친구였다.


출판사에 취업한 것도 아닌데, 그저 나랑 사귄다는 이유로 거의 매일 오타는 났는지, 비문은 없는지, 내용이 이상하진 않은지... 매일매일 졸작을 읽고 말해줘야 했다. 근데, 읽고 나서 그냥 "괜찮다."라고 말하면 안 됐다. 어디가 어떻게 괜찮고, 어디가 이상하고, 어떤 내용이 더 들어가면 좋겠고, 어떤 부분을 빼면 좋겠는지 '간단히' 말해주는 게 좋았다. 


가끔 남자친구가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괜히 상처가 됐다. 그 때문에 갑자기 둘이 싸우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쉬운 건 나였는데 남자친구에게 요구하는 내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운 편이긴 했다. 그러니까 적당한 선에서 발전적인 내용의 조언만 해주는 게 기술이었다. 진짜 지랄 맞은 여자친구였던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남자친구의 검토 스킬은 늘어갔고, 한 동안은 안정적일 때도 있었다. 


내가 느끼는 창작의 고통은 그 누구보다 심했다. 누가 보면 대작이라도 쓰는 줄 알았을 거다.  왜 굳이 칼퇴를 해서, 그 먼 길을 헤치고 와서, 애쓰고 낸 시놉시스를 까이며, 이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싶었다. 그게 다 나 스스로 저지른 짓이었다. 


'오늘은 교육원 가지 말까?' 


마음속 태만이 고개를 든 날, 팀장님이 갑자기 날 부르셨다. 빨리 일 마무리하고 취미 활동 하러 가라고 등 떠밀.. 먼저 챙겨주셨다. '괘.. 괜찮습니다. 오늘은 차라리 야근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면, 마침내 또라이 보존의 법칙의 그 또라이로 등극하는 거였다. 


그나저나, 글 그거 좀 쓴다고 매일 퇴근하고 밥도 못 먹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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