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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Apr 03. 2018

스타트업 기획자가 전문성을 찾는 법

열심히 삽질한 것 같긴 한데 뭐가 쌓이는지 모르겠을 때


 * 현재는 외국계 컨설팅사에서 데이터 다루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글 업로드가 늦을 것 같고 지난 경험이겠지만 일단 글의 묶음을 끝내는 데에 의미를 두고 경험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스타트업에서 사실 기획자만큼 애매한 직군도 없다. 개발자는 프로그래밍이라는 고유한 영역을 통해 코딩 스킬을 가시적으로 쌓아나가고 있고, 디자이너는 디자인이라는 명확한 영역이 있고 포트폴리오가 남는다. 하지만 기획자의 포트폴리오가 무엇일까 고민해본다면 뚜렷한 무엇인가가 떠오르지 않는다. 직접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성과정도가 떠오르는데, 그러면 그 포트폴리오는 다른 회사에 가서도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음을 기약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해당 기획자가 혼자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을까? 여러가지 질문이 남는다.


 조금 멀리 바다건너 스타트업들의 성지 실리콘벨리에서는 사실 기획자라는 직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글래스도어나 인디드같은 외국 채용포털을 잠깐만 찾아봐도 이 말을 증명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개발자는 Developer, 디자이너는 Designer(해외에서의 디자인과 우리가 흔히 쓰는 디자인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뒤로 하고서)로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기획자는? Planner..? 갑자기 파티 플래너와 웨딩플래너가 떠오른다. 심지어, 대부분의 실리콘벨리 회사에서 기획자는 개발자 디자이너를 막론하고 "좋은 아이디어와 이니셔티브"를 가진 뭔가 꾸며보고 싶은 누군가이다. 누가 기획자가 되든 상관 안한다.


 그럼 기획자는 어디서 나온 개념일까? 한창 스타트업에서 정체성의 혼란(?)에 빠졌을 때 구글링해본 카더라에 따르면 적어도 IT쪽의 기획자 개념은 일본의 대기업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관리하기 위한 직군으로 등장했던 것이 국내에도 자연스럽게 건너온 것이라 카더라. 문무에서 문을 중시하던 우리 사대부 전통에 따라 디자이너와 기술자인 개발자들은 우리 문에 능한 기획자들의 지휘를 따라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잘 맞았을 것이리라.


 문제는 스타트업으로 넘어오면서 발생한다. 규모가 작아도 너무 작은 스타트업에서는 철저한 기획안과 치밀한 계획따위 보단 그냥 만들고 내놓고 반응보고 욕먹고 다시만드는게 그냥 짱이다. 오죽하면 린스타트업이 그렇게 각광을 받았었을까. 꾀할 (기)와 계획할 (획), 계획을 꾀하는 일보다 그냥 하는게 더 가치있는 곳에서 기획자는 설 곳이 좁다. 




  맨땅에 헤딩하는 일개 기획자인 내가 가질 수 있는 무기가 무엇일지를 이 시기에 많이 고민했었고 자연스럽게 데이터로 관심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내놓은 기획안과 마케팅 전략이 우리에게 얼마나 돈을 벌어다 주는지를 알아야만 했기 때문이었으리.. 오프라인에서 하는 세일즈 비즈니스와는 다르게 온라인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비가시적인 특성을 지닌다. 서버에 들어오는 고객이 눈에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을 숫자로밖에 볼 수 없고, 그 숫자는 결국 데이터이다. 질문이 있으면 데이터에서 찾아야하고 그러려면 데이터베이스를 자력으로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어야 했다.


 열일 하시던 개발자 형님들께 조심스레 가서 쭈굴거리며 "저 이것좀 뽑아주세요.." 부탁드리며 내가 궁금한 결과를 내일까지 기다리느니, 혼자서 SQL 배워서 라이브 DB에(근데 이건 정말 위험한 짓이었다.. 반성중) 쿼리날리며 이터레이션을 빠르게 돌리는 것이 꽤나 매력적인 일이었다. 거기다가 나도 코드(비슷한것)을 짠다는 성취감도 있었으리.


 한가지 덧붙이자면, 결국 중요한건 SQL, R, Python같은 언어가 아니라 무엇이 알고 싶은지, 알아야만 하는지를 명확하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역량이었음을 느낀다. 아무리 쉬운 쿼리여도 정말 소중한 정보를 가져올 수도 있고 100줄 넘어가는 쿼리지만 아나마나한 정보를 가져올 수도 있을 테니까. (도메인 지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정도로 마무리해볼까..)  그로스해킹, 데이터분석 이런것들은 결국 이 이후의 문제이지 않을까



 

 아무튼 시작은 그랬던 것 같다. 실상 재미를 느꼈던 것은 해당 비즈니스에 대한 가설들을 세우고 데이터로 검증해나가는 것들이었던 것 같은데 조금씩 확장해나가다 보니 R이나 Python 같은 언어들이 시야에 들어왔고, 작은 데이터셋들로 연습하다보니 통계와 고급진 머신러닝 기법들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들은 나에게 쉽지않고 정복해나가야하는 대상이다. 한번에 호락호락 정복당해줄 분들이 아니기에 부딪히는 문제들을 풀면서 필요한 부분들을 그때그때 찾아보는 중이다. 하지만 이렇게 야금야금 멈추지 않고 전진해 나가다보면 멀지 않은 시점에 그래도 내 분야라고 할만한 땅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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