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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Han Jan 28. 2023

어제 얼마나 마신 거야?

Dec 19

'쌀국수나 한 그릇 할까?'

점심부터 쌀국수를 찾으면 전날 과음했을 가능성이 99%다. 늦은 시간까지 와인이든, 사케든, 테킬라든 들이켠 뒤 맞은 아침이면 쓰린 속을 부어 잡고 국물부터 찾는다. 꿀물을 한 컵 만들어 마셔보고, 냉장고 뒤져 채수를 내 끓인 야채짬뽕으로 달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찾는 것이 쌀국수다.


그릇에 면과 고기가 가득하지만, 그런 때에는 젓가락보다 숟가락에 손이 간다. 연신 국물을 들이켠다. 혼자 살 때에도 평소 주량보다 많이 마신 날이면 24시간 영업하는 쌀국숫집에 들러 한 그릇 뚝딱 먹고 속을 미리 달래기도 했다. 여전히 쌀국수는 우리 쓰린 속에 최선의 선택인 듯하다.


숙취를 해결할 때만 먹는 것은 아니다. 퇴근길에도 종종 쌀국숫집에 들른다. 국수에 고수와 바질을 잔뜩 얹어 먹으면 피로가 사그라든다. 주변에 다른 식당들도 많지만, 국밥이나 찌개처럼 간편하게 해결하면서 국물이 주는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메뉴이 없어서, 만만하게 찾는 이유도 있다.


쌀국수를 찾는 이유야 어쨌든, 그 한 그릇이 주는 정서는 우리 부부가 즐겨 먹는 다른 음식들이 주는 감정과는 사뭇 다르다. 쌀국수는 이따금 우리를 조금 더 차분하게 만들고 하루를 목도하게 만든다. 비싸고 화려하지 않지만,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쌀국수는 화려하지 않은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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