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학교 갔다 오는 길가, 여름 방학마다 놀러간 안동의 시골 언덕길, 동네 뒷산에 어느 곳에나 강아지풀이 무성했던 기억이 있다. 강아지풀은 그 이름만큼이나 작고 보들보들했다. 강아지풀을 습관적으로 한두개씩 뜯어서는 손가락 사이로 뜯어내곤 했었다.
이번 가을 주말 갑자기 고등학교 친구와 떠난 1박2일간의 서해안 섬여행.
인천항을 출발한 배는 2시간을 지나 덕적도항에 도착한다. 다시 한시간을 기다려 작은페리 (승선인원100명)로 갈아타고 한시간을 가면 도착하는 섬. 굴업도.
굴업도에 도착하기 전에는 한번도 들어본적도 없는 섬. 들어본 적도 없는 섬에서 1박2일을 보낸다. 인생은 참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겨서 그래서 흥미롭다. 빨간머리 앤이 얘기한 것처럼 말이다.
굴업도 개머리언덕의 수크령 군목
이틀간 참으로 많은 사진을 찍었다. 생전 처음 보는 작은 섬의 다양한 풍경들. 해질녘의 언덕에서 부터 해가 뜨는 작은섬의 풍광. 저 멀리 보이는 바다풍경에서 작은 모래알이 빼곡히 쌓여있는 해변가. 구름한점 없이 맑아 햇살이 따가울대로 따가운 민박집에서 키우는 두마리 큰 개집의 지붕들.
어디를 가나 강아지풀이 있다. 무성한 강아지풀.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웬 강아지풀이 이렇게 크지. 친구한테 얘기하니, 이건 강아지풀이 아니란다. 개풀이란다. 하하. 그렇다. 강아지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다. 작고 보드라운 어릴적 그 강아지풀이 사십년이 지나니 이렇게 개량이 되어서 커졌나보다. 우리는 그렇게 알았다. 외래종의 강아지풀이 우리나라의 토종 강아지풀을 밀어내고 이런 군락에서도 우세종이 되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튿날 출근을 하여, 점심 산책길에 한강변을 걷는다. 아니? 여기에도 그 큰 우세종의 강아지풀이 천지다. 이런, 우리나라 모든 곳에 다 강아지풀 천국이 되었구나. 황소개구리가, 또 무슨 무슨 물고기가 토종 개구리와 토종 물고기를 다 잡아먹고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더니 서울 한복판도 외래종 강아지풀이 길가를 덮었구나 했다.
점심 산책을 마치고 우리 부서의 식물 박사께 여쭙는다.
"거 왜 요즘 강아지풀은 다 그렇게 큰가요?"
"무슨 소리지요?"
"왜 어릴적 강아지풀은 작고 보들보들 했는데, 지금 강아지풀은 엄청 크쟎아요? 외래종이 토종을 다 밀어낸 건가보죠?"
"아! 그거 강아지풀 아니고. 수크령이라는 거요. 수, 크, 령. 다른 종이죠."
"수크령이요? 처음 들어보는데, 그거 강아지풀 아닌건가요?"
"강아지풀 아니고, 가을쯤에 피는 건데. 원래 강아지풀은 봄~여름 종이고. 아마도 수크령은 가을에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또한, 예전 우리 어렸을 적보다 기온이 올라가서 꽃들이나 식물이 보통 네이버 식물사전 같은데 보다 한달정도 빨리 핀다고 보면 되요."
아. 그렇구나. 그건 강아지풀이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그런데, 왜 내 어릴적 기억에 수크령과 같이 큰 강아지풀에 대한 기억은 없는 것일까? 내친김에 강아지풀과 수크령을 지식백과에서 찾아본다. 크기의 차이도 있고, 또한 강아지풀은 한해살이풀이고 수크령은 다년생이다.
강아지풀
[강아지풀]
밭과 들녘에 흔히 자라는 한해살이풀. 아래 부분에서 가지를 치며 누어서 자라다가 비스듬히 서서 높이 20~100 cm 정도로 자라 여름에 꽃핀다. 줄기에 잎은 어긋나게 달리고 잎은 피침형이다. 이삭은 통 모양이며 익을 때 고개를 숙인다. 강아지풀 씨앗을 식용하였다고 한다. 유사 식물로 금강아지풀이 있고 곡식으로 재배하는 조도 같은 속에 속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크령]
수크령은 벼가 한창 여물어 갈 때, 농촌 들녘 길가에서 아주 흔하게 관찰되는 화본형(禾本型) 여러해살이풀이다. 꽃이삭 생김새가 긴 브러시 모양으로 독특하고 아름답다. 땅속줄기(地下莖)가 짧아서 탄탄하게 무리를 이루고 살며, 식물체는 억세고 질기다. 잎이나 꽃대를 손으로 뜯으려다가 손을 베이고 만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이가 들어서일까? 원래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알고 몇십년간 잊혀져 있었던 것일까? 강아지풀인 줄 알았던 큰 식물이 수크령이라는 낯선 이름인 줄 이제야 알고 나니 갑자기 세상이 낯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