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글작가 #좋아하는일
"지금 돌이켜보면 무의식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끌어들이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 단계가 조금 더 일찍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도 있지만, 저에겐 회사생활 십 년 즈음에 찾아온 거죠. 스스로도 생뚱맞아보였지만(웃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꽉 붙들었어요."
요즘 퇴사가 유행이죠?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2030의 고민에는 도전과 패기가 묻어나지만, 입사한 지 십 년이 넘은 3040의 고민은 입 밖으로 꺼내기도 망설여집니다. 이미 걸어온 발자국은 내 인생의 전부인 것 같고, 주위의 시선과 책임감이 어깨는 짓누르기 때문일 텐데요.
계절로 치면 무더운 여름을 지나 가을로 진입하는 시기.
조금만 더 버티면 열매를 얻지 않을까
걱정과 기대
한숨과 기다림이 교차하는
그런 계절을 보내고 있을 3040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A. 안녕하세요, 조엘입니다. 저는 올해 마흔네 살이고, 서른여덟 살이던 6년 전에 퇴사를 했어요. 그 후, 웹소설도 쓰고, 유튜브도 하고, 정원일도 배우고...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아가는 중입니다.
Q.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A. 대한항공 기내식사업본부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항공사하면 보통 승무원을 떠올리는데 그 안에도 직군이 다양하거든요. 저는 일반직으로 입사하여 기내식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했어요. 식자재 구매, 위생 및 품질 관리, 로딩플랜(기내식을 비롯한 기내용품을 비행기 어디에 탑재할지 계획하는 업무) 등등이요.
Q. 항공사 직원의 베네핏은 무엇인가요?
A. 뭐니 뭐니 해도 직원 항공권이죠(웃음) 일 년에 25~30매를 95% 할인된 가격에 사용할 수 있거든요. 유럽 왕복 항공권을 20만 원 정도에 이용할 수 있는 거죠. 저도 사실 이 항공권 때문에 퇴사를 미루고 미루다가 십 년 넘게 회사를 다니게 됐답니다.
Q. 일 년에 25-30 매면... 정년까지 1000장 이상의 항공권을 거의 무료로 쓸 수 있는 거네요! 그럼에도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많은 분이 고민하시듯 회사생활이 저와 잘 맞지 않았고, 또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어요. 육아를 병행함에 있어 어려움도 있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볼 때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제2의 직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틈틈이 소설을 썼어요.
Q. 소설을요?... 갑자기?
A. 글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답하면 많이들 의아해하세요.
갑자기? 딱 이런 느낌으로.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무의식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가 끌어들이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 단계가 조금 더 일찍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도 있지만, 저는 회사생활 십 년 즈음에 왔던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생뚱맞아보였지만, 꽉 붙들었죠.
Q. 결국, 글을 쓰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신 거네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A. 육아휴직 기간에 쓴 글이 웹소설 공모전에 입상을 했어요.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데뷔를 했고요. 복직하고 1년 반 정도 회사를 더 다니면서 퇴사 결심을 굳혔습니다.
Q. 퇴사 후 생활은 어땠나요?
A. 생각만큼 장밋빛은 아니었어요. 웹소설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고, 나에 대한 정체성도 많이 흔들던 것 같아요. 소속감이 없다는 것에서 오는 외로움, 이대로 나는 사라지고 '엄마와 아내'란 타이틀만 남을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고요.
투둑... 투두두둑...
진짜 감 떨어지는 소리가 많이 들리더라고요. 젊다고도 할 수 없고, 늙었다고도 할 수 없는 사십 대에 뭘 할 수 있을까. 뭘 해도 이게 아닌 거 같았어요. 회사를 계속 다닐 걸 그랬나 후회도 했고요. 그래서 계약직으로 취직도 해보고, 대학원을 다녀볼까, 자격증을 따볼까, 고민도 많았답니다. 그러다가 퇴사 후 3년 즈음 새로운 도전을 했어요.
Q. 새로운 도전이라면?
A. 제가 회사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사계절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였거든요.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저녁 늦게 퇴근하면 지금이 계절의 어디쯤인지 햇볕도 볼 수 없고 날씨도 잘 느낄 수 없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엄마의 정원에서 가드닝을 시작했는데, 제 공간이 갖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덜컥 집 근처 뒷산의 일부를 샀어요. 이런 모습을 영상으로 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에 정원 브이로그도 찍기 시작했고요.
Q. 유튜브는 잘 되나요?
A. 글쎄요(웃음) 웹소설도 유튜브도 회사 다닐 때만큼의 경제적 수입을 가져다주진 않아요. 하지만 저를 살아 숨 쉬게 하고, 도전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죠. 얼마 전부터는 VJ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다른 영상을 만들때 보다 가드닝 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촬영하고 영상으로 스토리를 만드는 작업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다큐 형식의 영상을 찍고 있어요. 카페 알바를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동네 사람들, 친구, 가족이 주인공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일단은 다큐에세이를 영상(유튜브)과 글(브런치스토리)로 꾸준히 발행할 생각이에요. 또 하나의 계획이 있다면, 아이와의 여행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건데요. 퇴사 후에도 일정 기간 직원 티켓을 사용할 수 있어서 딸과 단둘이 여행을 하고 있어요. 영국, 하와이, 홍콩, 두바이, 프랑스 등에서 함께 했던 추억과 정보를 담아보려고 해요.
Q. 퇴사를 꿈꾸고 있는 3040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퇴사를 고민할 때 물론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크죠. 그 부분이 해결된다 해도, 앞으로 뭘 하며 인생을 보낼지 많은 고민이 되실 거예요. 오랜 시간 사회생활을 하던 분들은 아웃풋이 나는 활동을 찾기 마련이거든요. 집에만 있긴 답답하고, 뭔가 배우는 것도, 여행을 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고요. 그런 분들에게 갑자기 웹소설을 쓰고, VJ가 된 저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몸과 마음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끌어당길 때 놓치지 말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