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는 집에 내려가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 두자릿수의 시간동안 도로에 묶인 차에 짐짝처럼 낑겨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닥 친척들과 가깝게 지내는 편이 아니라서 그렇기도 합니다. 시골에 내려가면 할머니께서는 나의 나이를 물어보십니다. 대답을 들은 할머니는 크게 소스라치시며, 주님께서 점지해주시는 좋은 배필을 하루빨리 만나기 위한 기도를 올리십니다. 일가 친척들이 모두 모인 밥상 앞에서 말입니다. 저는 작년에 그 광경을 목격하고 이게 할머니의 위트있는 농담이나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하고 웃을지 말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온 가족의 기도 도중 슬며시 뜬 눈에 비친 친척들의 표정이 모두 엄숙하고 간절해서 흡사 제가 기도 중에 불경하게 다른 생각을 하는 사탄 마귀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일로 명절에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미리 부모님만 보고, 명절날에는 일부러 회사 당직을 선다든가, 몸을 아프게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꼭 멀리 가는 게 싫거나 기도를 하는 게 싫어서만은 아닙니다. 명절에 텅 빈 서울은 꽤나 마음에 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느지막히 일어나 편의점을 갔을 때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늦게 일어나 씻지도 않고 잠옷을 입고 있습니다. 거리는 한산하고 영업하는 가게도 별로 없습니다. 언뜻 유령 도시 같기도 한 서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 정말 휴일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없이 느긋하고 나른해집니다. 모두가 놀러 나오는 주말에는 볼 수 없는 광경입니다. 물론 그 시간동안 고속도로에서 엉금엉금 기고 있으면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학교에서 일찍 등교하는 것에 미쳐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학교에 오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말도 안 되는 경쟁심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누가 먼저 와 있으면 몹시 분해 결의를 다졌습니다. 그래서 어떤 날에는 새벽 다섯 시 반에 미친 다람쥐처럼 날뛰면서 부산스럽게 계란후라이를 먹고 아버지를 깨워 태워다 달라고 조르곤 했습니다. 제가 만약 아버지였다면 볼기를 세차게 때렸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학교에 1등으로 도착한 적이 있었습니다. 동이 채 트지도 않은 푸르스름한 새벽녘에 공기는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나 외에 그 어떤 사람의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텅 빈 학교가 모두 내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미쳐 날뛰던 날다람쥐도 컴퓨터가 생기고 규칙적인 늦잠을 자다 보니 그 이후로 지금까지 어딘가에 1등으로 등교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만, 추석 날의 텅 빈 서울을 볼 때면 그 텅 빈 운동장이 생각납니다. 그 운동장보다 만 배 정도 크고 넓겠지만, 내 것이 된 것 같은 느낌만은 여전하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