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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징 Aug 20. 2023

나 돌아보기

뭘 하고 살았길래 벌써 8월 말이 된 거냐 

230820



최근 나에 대해 열심히 기록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너무 훌쩍 지나가는데, 하루의 끝에 나를 돌아보면 대체 뭘 하고 보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아졌다. 이게 어제 일이라면 더 그렇고, 일주일 전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한 달 전이라면 정말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난다. 달력은 벌써 8월 말을 향하고 있고, 이러다간 갑자기 여름이 끝나버리더니 예고도 없이 연말이 올 테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날짜를 쓰다가 3 위에 검은 선을 찍찍 긋고 4를 써야 하는 날이 와버리고 말 거다. 하반기에 들어서야 이래선 안 되겠단 생각에 좀 제대로 살아보려는 수단으로 일단 기록을 택했다.    

  

원래도 다이어리 쓰는 걸 좋아하긴 했다. 매년 10월쯤부터 본격적인 다이어리 탐방에 돌입해서 (그러고 보니 다이어리 고를 날이 머지않았다) 11월쯤 새 다이어리를 산 뒤 12월 내내 신년 2월 달력까지 미리 꾸며놓다가 1월부터 방치하는 게 나의 매 연말연시 패턴이다. 매번 이번에야말로 열심히 쓰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는데, 새롭게 결심할 때마다 새 다이어리를 사버리곤 해서 올해만 내가 사들인 다이어리가 여섯 종류는 되는 것 같다. 이번에도 나를 기록하겠답시고 새로운 다이어리를 또 샀다. 이번엔 정말 꾸준히 써야 할텐데...      


프리랜서랍시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보면 하루하루가 정말 쉽게 흘러간다. 매일 같은 곳에서 비슷한 일을 하며 지내다 보니 내가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던 날이 어제였는지 엊그제였는지 아니면 저번 주였는지도 헷갈릴 지경이다. 허송세월 보내다 정작 일은 하나도 안 한 것 같은 날도 수두룩하다.      


안 되겠다 싶어 하루에 내가 하는 일을 모조리 기록해보기로 했다.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다. 아침 먹고 일어나면서 ‘아침 먹음’하고 시간을 적고, 놀다가 정신을 차리면 ‘놀았음….’하고 시간을 적어둔다. 그리고 비슷한 활동은 같은 색 형광펜으로 칠해두었다. 자기 계발에 쓴 시간은 연두색. 식사나 샤워 등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시간은 하늘색. 일은 빨간색. 노는 시간은 주황색이다. 그리고 주황색이 수두룩한 내 일과를 보며 비명을 지른다.      


며칠 동안 하루를 기록해보고 나니 비로소 나에 대해 알게 된 바가 있다. 나는 저녁형 인간도, 새벽형 인간도 아니다! 저녁을 먹은 순간부터 집중력이 처참하게 무너져 아예 기록조차 안 하는 날이 매일 같이 이어졌다. 그리고 의외로 오전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었나보다. 어쩐지 벼락치기로 밤새워봤자 되는 일 하나도 없더라. 그리고 유독 목요일과 일요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다. 일해야지 마음을 먹어도 온종일 잠을 자며 하루를 날려버리기 일쑤다. 분명 그 전날까진 부산스럽게 이것저것 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이번에 산 다이어리는 이것. 버섯노트. 쉽게 속지를 갈아끼울 수 있고, 가벼워서 좋다. 


나에 대해 알게 된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일상을 다시 꾸려보기로 했다. 일단, 아침 루틴을 만든다. 가장 즐거운 일을 일과의 맨 앞에 배치해야 벌떡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모닝페이지는 그런 내게는 꽤 도움이 되는 루틴 중 하나다. 부랴부랴 잠들기 바빠 저녁에 일기 쓰는 습관을 도저히 못 들이고 있는 나에겐 차라리 아침에 일어나서 전날 일기를 쓰는 것이 낫더라. 게다가 아무 말이나 쓰고 나서 스티커 몇 개를 붙여가며 꾸며놓는 것이 제법 재미있어서, 일기를 쓰겠다고 벌떡 일어날 수 있게 된다. 모닝페이지는 일어나자마자 45분 안에 써야 한다는 이야기도 어디서 주워들은 덕에 허겁지겁 책상에 앉는다.      


오전은 그렇게 아침 일기-유산균 먹기-아침 식사-책 읽기-운동하기 루틴으로 보낸다. 직장인은 꿈도 못 꾸는 오전 루틴이다. 이게 프리랜서의 특권이랄까. 어쨌든 이건 제법 잘 지키고 있는데, (사실 운동하기는 죽어도 싫어서 빼먹는 날이 많긴 하다) 이렇게 오전을 보내고 나면 ‘제법 시작이 좋다’는 뿌듯함에 오후도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게 된다. 오후는 필사적으로 나를 달래가며 글을 쓴다. 뽀모도로 타이머도 켜보고, 아예 노트북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가보기도 하면서. 더럽게 집중을 못 하는 바람에 효율이 극악인데, 이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엔 무조건 컴퓨터를 끄기로 했다. SNS 중독자에 덕질하기 바쁜 오타쿠는 놀 때도 꼭 컴퓨터가 필요한데, 신나게 놀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새벽 두 세시를 훌쩍 넘겼을 때가 많다. 수면 패턴이 어그러지는 원인이 이건가 싶어 아예 컴퓨터를 끄기로 했다. 어차피 저녁 먹고 난 뒤엔 일에도 집중이 안 된다. 일하겠단 핑계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봤자 새벽까지 놀기만 한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차라리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낫다.      


월요일 아침엔 운동 대신 한 주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돌아봐야만 내가 어떤 식으로 지내고 있는지 알고 개선해나갈 수 있더라. 생각보다 조금씩 뭔가 해둔 게 많아서 자책감을 덜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월말에는 나에 대한 셀프 보고서도 간단히 작성해봐야겠다. 그래야 가을의 찬 바람이 불어와도 불안함에 떨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매일을 돌아보고 정비해나가다가도 한 순간 루틴이고 뭐고 폭삭 주저앉을 때가 자주 있긴 하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기도 하고, 별안간 만사가 다 귀찮아서 벌렁 드러눕게 되는 날도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기록하던 다이어리엔 공백이 생기기 마련이고, 공백은 나의 의욕을 꺾어서 결국 ‘아, 몰라. 다 때려치워.’라는 결과로 이어지곤 한다. 다행히 이번 다이어리는 공백 없이 이어서 채울 수 있도록 속지를 바꿔 끼울 수 있는 다이어리로 준비해뒀다. 덕분에 무너져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기록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이것도 과거의 나를 돌아본 결과 얻어낸 새로운 개선점이다.      


생각보다 나는 나에 대해 잘 모른다. 이만하면 나이도 어지간히 찼는데, 아직도 나에 대해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많다. 그동안 나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았다는 방증 같기도 하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아직 한참 많은데, 그때까지 이 변덕스러운 나를 잘 달래서 끌고 나가려면 나에 대해 충분히 알아둬야겠지. 당분간은 나의 생활이나 생각 이것저것을 모조리 기록해보고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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