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 홀로 영화 <극한직업> 패대기.

왜 나만 웃을 수 없었는가.




20년도 더 된 영화를 꺼내보자. 오스틴 파워(2007). 관객은 영화 속 화장실 유머에 매료되었다. 영화는 연일 흥행 기록을 갈아 치웠고, 드디어 그 명성이 한국으로 밀려왔다. 결과는 참패. 그들의 화장실 유머에 냉대했고, 주인공 연기력만큼은 인정한다는 동정론까지 얻었다.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주야장천 쏟아내는, 아예 대놓고 웃으라고 만든 영화 <극한직업>. 평일 오후, 천만 영화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메가박스 신촌은 한산했다. 연휴 이후 숨 고르기, 지리적 악조건, 평일 낮이라는 맹점으로 한산함을 이해하는데 충분했다. 문제는 그런 환경에서 코미디 영화를 본다는 게 두려웠다. 추석을 겨냥해 상영했었던 <가문의 영광>, <가문의 위기>도 엄청 기대했다가 피본 케이스였다. 같은 조건이다. 혼자 보는 영화에 휑한 좌석. 술도 같이 마셔야 즐겁듯이 코미디 영화에서 전염되는 웃음은 분위기 고조에 필수 요소다. 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결과? 미리 본 천만 관객에게 꺼내기 힘겨운 대답이다. 재미없었다. 적재적소의 유머가 아니라 시종일관 쏟아내는 개그 코드는 금세 피로감이 찾아왔고, 언젠간 터지겠지 하는 기대감도 무력해졌다. “난 한 놈만 패”라고 부르짖었던 주유소 습격사건 속 유오성을 진선규가 오마주 하기엔 부족했다. 보통 평이 이랬다.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영화’, ‘작품성은 부족하지만 오락영화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 다른 이들이 느끼는 큰 장점이 사라지니, 그로 인해 덮어졌던 단점들만 보였다. 진짜, 갈비도 아니고 치킨도 아니었다. 최소한 나에게. 악평은 주위에 나밖에 없다. 내가 분명 이상한 거다. 


작가의 이전글 술자리 아날로그니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