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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의 대남포차









땅이 얼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빨라지고 보폭은 좁아졌다. 골목의 골목으로 갈수록 사람 냄새가 진동하였다. 추운 밤공기에 채워진 사람들의 날숨. 서서 내뿜는 입김에는 번호표가 붙어 있었다. 나는 문어숙회를 먹겠다고 부산까지 내려왔다. 물론 소중한 인연을 만나는 게 주목적이었고, 이들과의 연결고리가 문어숙회였다. 추운 겨울에 부산에서 맛보는 문어는 미식가의 버킷리스트 같았다. 식당을 겨우 찾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 기다리는 줄 끄트머리에 진입하였다. 영하의 겨울 공기와 맨살이 닿지 않게 군데군데 최대한 여몄다. 밖에서 바라보는 창문 속 식당은 ‘가진 자’의 여유로움 그 자체였다. TV 속에는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500M 여자 경기가 한창이었다. 이상화 선수가 등장하니 식당 안은 후끈해졌지만, 밖은 남의 나라 불구경이었다. 슬슬 임계점을 견디지 못한 사람이 속출하면서, 어부지리로 대기번호가 줄어들었다. 우리도 같은 번뇌를 앓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초반의 유혹을 이기고 나니, 기다린 게 아까워서라도 대기 줄에서 이탈할 수 없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다. 이상화 선수의 금메달 소식과 함께 우레와 같은 함성이 열린 문틈 사이로 빠져나갔고, 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비어 있는 테이블에 앉아 몸을 녹였다. 밖에서 넘볼 수 없었던 가진 자의 안락함을 잠시나마 만끽하면서, 전광석화처럼 메뉴를 주문했다. 당연히 문어숙회. 뜨거운 응원 기운에 데워진 문어 한 마리가 테이블 한복판에 놓였다. 한 명이 가위로 뭉텅뭉텅 자르는 동안 함께 시킨 과메기로 먼저 저녁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과메기는 쫀득하게 씹히는 게 입안에서 부드럽게 코너링되어 식도로 넘어갔다. 누군가가 ‘기다리기 잘했다’라고 선창을 하고 나머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뭉텅이로 자른 문어를 식기 전에 소주와 함께 털어 넣었다. 씹는 힘에 반작용하는 반발력이 대단했다. 탱글탱글한 문어숙회. 대기 줄에 순응하며 기다렸던 대남 포차. 추운 날만 되면 생각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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