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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턱대고 텃밭 일기(5) - (D+25) 모종 살피기







시골살이 학교를 수료하고 궁금한 나머지 집에서 작은 작물부터 키웠다. 농사를 가르쳤던 나무 형님이 집에서 간편하게 콩나물을 키울 수 있는 팁을 알려줬는데, ‘농알못’인 우리(시골살이 학교 2기 동기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준비물을 보면, 커피 테이크아웃 컵 두 개와 콩 그리고 키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면 된다. 방법은 이렇다. 위쪽 컵 바닥에 송곳으로 물이 들어갈 구멍을 몇 개 뚫고, 사온 콩 약 30알을 넣는다. 아래쪽 컵에는 1/3 정도의 물을 넣는다. 위쪽 컵을 아래쪽 컵에 겹쳐 넣는데, 중간에 고무줄을 씌워 공간을 좀 띄우는 게 포인트다. 물은 매일 갈아주지 않으면, 콩이 그 안에서 썩어버린다. 입문도 쉽고 관리도 부담스럽지 않지만, 꾸준하게 지켜볼 줄 알아야 한다. 나야 처음에는 이해 수준으로 따라가다가 동기들이 하나 둘 시작하고 과정이 진척되며 올라오는 사진에 호기심이 생겼다. 준비물이 많거나 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리스크도 적어서 나도 ‘컵 콩나물 키우기’ 대열에 합류했다. 어떤 이는 유기농 콩을 샀지만, 나의 모토는 ‘있는 그대로의 것’이기에, 집에 있는 콩과 당일 사 먹었던 테이크아웃 컵으로 출발했다. 세팅을 마치고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TV 옆) 곳에 뒀다. 활동반경 안에 최대한 시야에 걸치는 곳에 둬야 무의식 중에도 반응할 수 있으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였다. 외출이 잦고 오래 집을 비워 물을 갈아주지 못해 썩어버렸다. 어떤 친구는 키운 콩나물로 소박하게 부부가 먹을 수 있는 양의 콩나물밥을 결과물로 냈다. 비겁하지만 엄마 탓을 해볼까. 엄마는 그동안 물을 갈아줄 생각은 안 하고, 전화로 ‘썩는 냄새가 방에 진동하니 버려야 하지 않겠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내가 조화를 키워도 냄새가 난다고 했을 거다. 애초에 엄마는 이 시도 자체를 부정했고, 난 결국 오롯이 내가 맡겠다고 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지. 결국 콩은 콩나물로 성장하지 못하고 병에 걸렸다. 나에게는 작은 도전의 실패 정도지만, 생명체를 경시한 면에서 나는 죄인이다. 그 죄를 면하려면, 최소한 텃밭은 살려야 했다.



20150615_214734.jpg 간단하게 콩나물을 키울 수 있는 방법.



모종을 심고 엿새가 지났다. 무와 배추는 땅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물을 주라고 들었다. 비가 오는 날은 패스하고 뙤약볕이 드는 날만 골라서 물을 줬다. 혹시나 외부 일 때문에 거르게 되는 날이면, 텃밭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다. 물을 줄 때 물살이 강하면 흙이 파여 뿌리가 태양과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어서 최대한 약한 물줄기로 흙을 적셨다. 오늘은 몇 번 도움을 받은 걸 갚는 날이다. 작물별로 물 주는 시기와 성격이 다를 수 있어서 밭주인마다 일일이 물어봤다. 작은 밭이지만, 수돗가에서 물통에 물을 받아 이동하고 뿌리고 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다른 밭의 물 주기를 마치고, 내 밭에 가서 모종의 상태를 파악했다. 아니나 다를까, 부실한 녀석이 보였다. 1번 레인의 가장 첫 번째. 아무래도 첫 번째 모종이라 많은 생각이 반영된 곳이다. 적확한 지식도 없이 순전히 경험으로 심은 터라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 무의 모종을 깊게 심지 않아서 잎에 매가리가 없었다. 아쉽지만 다른 모종으로 대체했다. 혹시 몰라서 저번 주에 텃밭 옆 작은 공간에 스페어로 모종 몇 개를 심었었다. 배추는 벌레가 좀 먹었는지, 몇 군데 벌레가 앗아간 부분이 보인다. 나무 형님한테 물었다. 이 상태가 온전하냐고. 나쁘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라 했다. 농사는 수련의 일종이었다. 자라고 나는 데 있어서 거짓은 없다고.



20160915_170451.jpg 텃밭에 물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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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모종(왼)과 배추 모종(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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