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브루어리, 신포닭강정, 인천집, 루비살롱, 송월동 동화마을
런던 해크니의 수제맥주 브루어리들이 외벽을 그래피티와 페인트로 칠해내던 장면이 떠올랐다. 인천 개항동의 흰색과 파란색 외벽이 바로 그 기억을 불러냈다. 라거 맥주의 시원함을 색으로 표현한 듯, 그곳에서 만난 <인천 브루어리>의 시그니처는 ‘개항로 라거’였다.
포스터 속 야성적인 남성의 눈빛, 병에 새겨진 진취적 폰트는 단순히 술의 이름이 아니라 도시의 기개를 담고 있었다. 개항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태어난 이 맥주는 인천이라는 땅 위에서만 맛볼 수 있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플레이버, 그러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는 번쩍 정신을 깨우는 청량감. 입구 앞 간이 테이블에 앉아 병째로 기울이는 순간, 인천의 첫맛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바로 옆 신포시장의 닭강정을 부르는 맛이기도 했다.
“가서 닭강정 사 와!”
인천에 간다고 하면 꼭 들려오는 말. 인천의 안부 인사 같기도 했다. 그만큼 신포국제시장은 도시의 얼굴이었다. 약 백 년 전, 일본인에게 채소를 팔던 중국인 점포들로 시작된 시장은 다국적 상인들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국제시장이라 불렸다. 지금은 양옆 골목마다 군침 돌게 하는 먹거리들로 빼곡하다. 서쪽 끝에는 ‘산동 만두 공갈빵’, 동쪽 끝에는 줄이 끝도 없는 <신포 닭강정>이 있다. 시장을 찾은 일행들은 자연스레 두 편으로 갈라져 각자의 줄을 서곤 한다. 하나의 시장이 아니라, 거대한 미식 네트워크처럼 서로의 존재를 살려내는 방식이었다.
시장 곳곳에는 쫄면의 원조 집, 사십 년 내공의 순댓국집,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집, 그리고 팥죽과 디저트 가게까지… 꼬리를 물듯 이어지는 먹거리들은 도시의 기억을 지탱하는 또 다른 골조였다.
종로 피맛골에서 처음 삼치를 맛보았을 때의 안도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테이블에 삼치가 올라오면, 얇은 지갑도 잠시 잊게 만드는 든든함이 있었다. 그 피맛골은 사라졌지만, 인천에는 여전히 삼치거리가 살아 있다.
40여 년 전, 노부부가 연탄불에 삼치를 구워내며 시작된 이 골목. 나는 이번에도 처음 추천받았던 집, <인천집>을 다시 찾았다. 황토 화덕에서 구워낸 삼치구이는 연탄의 향 대신 고소함을 머금었고, 막걸리 한 사발이 짭짤한 살점 위에서 ‘단짠’의 화음을 이뤘다. 자연스레 주문은 늘어났고, 잔마다 균형을 잡아가는 듯했다. 삼치는 인천의 골목이 내어주는 가장 검소하면서도 호방한 환대였다.
2009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만난 다큐멘터리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인천 부평의 라이브 클럽 루비살롱을 무대로, 갤럭시 익스프레스 같은 밴드들의 불꽃 같은 순간을 담아냈다. 그 공간은 수많은 인디 뮤지션들의 요람이었다.
세월이 흘러 <루비살롱>은 신포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오래된 인천여관을 개조해 카페이자 전시장, 음악 감상실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낡은 욕실과 화장실마저 인테리어로 남겨둔 채, 레트로한 소품과 음악적 오브제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낡음은 촌스러움이 아니라,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음악의 기억을 더욱 운치 있게 했다.
다시 개항로 맥주의 포스터로 돌아가 보자. 날카로운 눈빛의 주인공은 70대 화가 최남선 씨였다. 평생 간판을 그리고, 페인트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그림을 놓지 않았던 사람. 그가 2017년 붓을 댄 곳은 송월동 동화마을이었다.
한때 부촌이었으나 슬럼화되었던 동네는 2013년 주거환경 개선 사업과 함께 ‘동화’라는 옷을 입었다. 골목마다 세계 명작 동화가 벽화와 조형물로 살아났고, 자유공원 언덕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마치 남산에서 해방촌을 내려다보는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골목 구석구석, 동심의 블랙홀이 열리듯 포토존이 숨어 있었다. 감성 충만한 벽화 앞에서 같은 연인과 몇 번이나 마주쳤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동화 속 주인공이었으니까.
인천은 늘 대비와 조화의 도시였다. 라거의 시원함과 닭강정의 달콤함, 삼치의 짭조름함과 막걸리의 부드러움, 낡은 여관과 빛나는 음악, 그리고 쇠락한 동네 위에 덧입혀진 동화의 색채까지. 이 도시의 맛과 풍경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보완하며 새로운 조화를 빚어낸다. 그래서 인천은 언제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맥주처럼 생생하고, 벽화 속 동화처럼 꿈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