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로파이 책방 공연, 오차커피공방
나는 내 주장을 앞세우기보다는, 다양한 생각과 목소리를 경청하는 편이다. 특히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거나, 닮고 싶은 가치관을 지닌 상대라면 더욱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경청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말하고 싶은 충동이 틈틈이 솟구쳐 오를 때가 많지만,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를 붙들고 먼저 듣는다. 듣고, 그리고 나서야 말한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좋고, 유익한 순간이 있다. 어느 날, 그런 시간을 만났다. 책방 ‘로파이’에서였다.
이틀 연속 방문한 책방이었다. 첫날 서점 방문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는데, 지인에게서 책방 공연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시인과 가수의 합동 공연이었다. 망설임 없이 입장료를 보내고 책방으로 향했다. 마당엔 관객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고, 저녁식사를 마친 <시인 임승유와 싱어송라이터 듀오 호와호>가 조용히 책방 안으로 들어섰다. 공연은 시와 음악이 서로를 감싸 안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호와호는 임승유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자신들의 노래와 어울리는 시를 골랐다. 시인이 낭독하면 곡이 이어졌고, 그 사이사이에 이야기와 웃음이 피어났다. 이호의 허스키한 음색과 모호의 유쾌한 농담은 공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울림은 결코 작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시선과 감정, 가치관을 고스란히 마주할 수 있었고,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졌다.
구례 읍내의 한 카페로 향했다. <오차커피공방>. 문 앞에는 순한 강아지 한 마리가 앉아 있었고, 나는 조심스레 문 앞에 서 있었다. 애완동물을 잘 다루지 못하는 편이라 망설였지만, 결국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강아지는 자연스레 내 뒤를 따라 들어왔고, 주인장은 강아지가 들어와도 괜찮다며 화답했다. 그렇게 나는 따뜻한 목소리와 차 향이 감도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안은 목재의 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따뜻한 공간이었다. 찻잔과 주전자가 놓인 선반, 좌식 테이블, 곳곳에 숨은 이야기들이 나를 반겼다. 나는 모로코 커피를 주문했다. 예전 모로코 영화 촬영이 취소된 아쉬움을 떠올리며, 그 나라의 향신료를 커피로나마 만나보고 싶었다. 진한 중동의 향이 입안에 퍼질 때, 낯설지만 기분 좋은 긴장이 일었다. 익숙해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그 바의 높은 의자에 앉아 구례의 독립 매거진을 펼쳤고, 주인장이 이끄는 작은 활동들을 둘러봤다. 이곳은 커피 한 잔을 넘어, 이야기와 가치, 그리고 따뜻함이 고요히 녹아든 장소였다. 카페를 나온 후에야 티라미슈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이곳을 찾을 이유가 생겼다. 그렇게 나는 커피 한 잔과 함께 구례의 한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