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오일제>
생일 아침, 식탁 위의 미역국은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렸다. 우리나라는 국과 탕의 나라라지만, 특별한 날의 국은 많지 않다. 그중에서도 생일 미역국은 유독 또렷하다. 바다 내음을 머금은 그 따끈한 그릇에는 단지 영양을 넘어 한 인간의 시작과, 그 시작을 가능케 한 몸의 기념이 함께 담겨 있다. 미역에는 철분과 칼슘, 요오드, 식이섬유가 넉넉히 들어 있어 산후 회복에 좋다지 않는가. 그래서 오래전부터 산모의 탕이 되었고, 지금도 우리는 자신의 생일에 미역국을 먹으며, 그날의 고통과 기쁨을 통과한 한 사람, 어머니를 조용히 호명한다.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넘길 때, 우리는 실은 ‘나’를 낳은 몸의 기억을 먹는다. 한 그릇의 국이 기억을 불러내고, 감사의 언어를 대신한다.
그렇다고 미역국이 기념일의 성찬에만 머무는 건 아니다. 전날 과음으로 속이 더부룩한 아침, 나는 슴슴한 해장으로 미역국을 찾는다. 뜨겁지 않게, 과하지 않게, 그러나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내는 국물이기 때문이다. 해외에 오래 머물렀던 때엔 그 그리움이 더 선명했다. 인스턴트 봉지 대신, 택배로 날아온 마른 미역을 정성스레 불리고 싶었다. 혼자 처음 끓이던 날, 마른 미역의 잠재력을 몰라 물을 가득 머금은 초록의 숲을 보고 경악했던 초보의 실수도 있다. 그래도 조리는 의외로 간단했다. 찬물에 불린 미역을 참기름 두른 냄비에 소고기와 함께 살짝 볶고, 물을 부어 끓인 뒤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끝이다. 라면보다 훨씬 건강한 한 그릇이라는 사소하지만 단단한 자부심이, 타지의 몸과 마음을 지탱해 주었다.
한동안 내게 미역국은 ‘소고기의 숨결’로 완성되는, 변하지 않는 어머니의 손맛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광화문의 한 미역국 전문점에서 경상도의 바다가 나를 조용히 설득했다. 미역 사이로 스며든 생선의 향과 가시를 바르는 번거로움조차 잊게 만드는, 바다의 기억 같은 깊이였다. 그 낯선 조화 앞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미역국은 단일한 문법의 국이 아니라, 바다와 육지, 익숙함과 새로움이 한 그릇에 어깨를 포개는 세계라는 사실을.
얼마 후, 또 다른 미역국 집을 찾아갔다. 전날 예약을 시도했으나 현장 웨이팅만 해야하는 답을 듣고, 결국 오픈런을 택했다. 문 앞에서 15분을 서성이는 동안 일본인 여행객들이 조용히 줄을 이었다. 외관과 창 너머로 스며 나오는 내부의 분위기는, 호젓한 일본 식당을 닮아 있었다. 동행한 보람이가 도착하자, 정시가 되었다는 듯 문이 열리고 ‘노렌’이 살포시 걸렸다. 이 집엔 일본의 미감이 은근한 기류처럼 흐르고 있었다. 예약한 손님들이 먼저 자리로 안내되고, 다행히도 우리의 식사 시간도 차례를 얻었다.
메뉴는 단 하나, ‘들깨미역국’. 거금도산 어린 미역을 쓰고, 고시히카리로 지은 가마솥밥이 곁들여진다. 모든 것이 천천히 이루어졌다. 낮은 조도의 실내, 목재의 결이 한숨 쉬듯 이어지고, 선반 위 병들에는 햇빛이 잠시 다녀간 흔적이 비늘처럼 반짝였다. 가스불 위에선 뚝배기들이 조용히 끓고, 다른 쪽에선 갓 지은 밥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주인장은 간간이 맛을 보며, 손님에게 내보낼 타이밍을 정확히 기다렸다. 마치 한 그릇의 국에 시간이 숙성되길, 예의를 표하듯.
내 앞에 상이 나왔다. 검은 도자기 그릇 속 들깨미역국은 한눈에도 묵직했다. 숟가락을 넣자 미역이 부드럽게 흩어지고, 들깨의 향이 김과 함께 천천히 퍼졌다. 첫 모금은 고소함이 문을 열고, 곧이어 사골의 깊이가 뒤를 받쳤다. 자극은 줄이고 안도를 키운 맛, 마치 오래된 위로가 국물이 되어 돌아온 듯했다. 반찬으로 나온 낙지젓갈과 갓김치는 그 자체로 작은 문장들이었다. 짭짤함과 아삭함이 교대하며 입안을 리듬으로 채웠고, 나는 자연스레 리필을 청했다. 정성은 혀로 바로 번역되는 법이었다.
사장님은 말수가 적지만, 고개 끄덕임 하나로 취향의 좌표를 정확히 찍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미소년처럼 잘생겼다. 손님의 속도를 읽는 그의 손놀림은 칼을 고르는 장인처럼 망설임이 없었다. 주문을 설명하는 목소리는 기름의 점성처럼 단정하고 밀도가 있었고, 필요 이상의 친절을 덧칠하지 않는 담백함이 공간의 규칙처럼 작동했다. 나는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릇 위에 적힌 문장을 한 줄씩 베껴 쓰듯 천천히 맛을 읽었다.
나는 미역국이라는 음식의 형식을 다시 생각했다. 미역국은 영양의 총합이면서, 동시에 인문학적 물음표다. ‘우리는 무엇으로 서로를 기억하고 기리는가.’ 생일의 미역국은 어머니의 시간을 기념하는 의식이고, 숙취의 미역국은 몸의 균형을 되찾는 약속이다. 타지에서의 미역국은 귀환의 암호였고, 생선 향 짙은 경상도의 미역국은 편견의 풍향계를 바꾼 사건이었다. 들깨미역국은 또 다른 대화였다. 들깨의 고소함과 사골의 깊이가 만들어낸 저음의 합창은, 결국 ‘천천히’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참고로 이 식당은 매일 50그릇만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