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예술기술도시 — 산, 그림자, 물, 볕, 달, 내음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까지 종종 걸어온다. 아무 생각 없이 소화를 위해 걷는 날도 있고, 오래 마음에 담아둔 장소를 확인하며 들르는 날도 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골목을 향해 일부러 길을 비틀 때도 많다. 마포에서만 15년을 살았건만, 익숙해졌다고 느껴지는 순간마다 도시의 결은 금세 낯설어지고, 나는 발바닥으로 새 지도를 그리듯 자발적인 투어 코스를 만든다. 오늘 저녁도 약 3km를 걸었다. 연말의 도시는 공사 펜스가 박자처럼 이어졌고, 합정역 사거리엔 ‘합플레이스 페스티벌’ 현수막이 바람을 붙잡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트리 외관으로 감싼 카페 하나가 휘황찬란한 오브제처럼 거리를 비췄다. 황량한 대지를 가로지르는 직선보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바뀐 상권의 체온과 새로 세워진 조형물의 호흡을 읽어내는 일이 내겐 더 좋은 산책이다.
영등포는 그 산책의 기억을 오래 품은 지명이다. 1990년대 초등학생이던 나는 안양에서 103-2번 버스를 타고 영등포역에 내렸다. 엄마의 손을 잡고 들어선 롯데와 신세계, 그리고 지금 타임스퀘어 자리에 있던 경방필 백화점은 어린 눈에 거대한 빛의 창고였다. 백화점 옆 골목에 줄지어 있던 금강제화의 가죽 냄새, 시장의 소란, 철길을 가르는 기적 소리—그 모든 것이 ‘영등포’라는 지명의 첫 목소리였다. 2000년대, 아버지가 신길동 썬프라자 인근에서 음반점을 운영하던 시절에는 종합병원이 중심에 선 상권과 베드타운의 리듬을 배우듯 그 동네를 드나들었다. 그리고 2010년 이후, 방송국이 몰려 있던 여의도는 내 생활권이 되었고, 점심이면 윤중로와 샛강을 따라 걸으며 시간을 접었다 폈다. 2012년, 여의도 한복판에 종합쇼핑몰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처음엔 우스웠지만, IFC가 올려지고 더현대서울이 자리를 잡자 주말의 인파가 도시에 다른 문법을 새겼다. 영등포는 그렇게 내 시간표에 따라 변색되는 필름처럼, 한 장 위에 또 한 장이 포개지는 ‘팔림프세스트의 지명’이 되었다.
그 겹겹의 문장들 사이로 최근, 문화도시영등포가 연 전시 <2025 예술기술도시 — 산, 그림자, 물, 볕, 달, 내음>을 보러 갔다. 옛 하나로마트 건물, 경인로 719의 비어 있던 내부는 디지털 빛과 향기, 진동과 물성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 전시는 기술을 진열하는 쇼케이스가 아니라, 도시가 잃어버린 자연의 어휘를 다시 발굴하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산’은 재개발 도면에서 지워진 지형의 기울기였고, ‘물’은 콘크리트 틈새로 스며든 기억의 냄새였으며, ‘볕’은 외벽 광고판 뒤로 갇힌 오후의 시간이었다. ‘달’은 인공조명이 차지한 밤하늘의 잔여, ‘내음’은 산업의 냄새와 사람이 남기는 체취가 뒤섞인 존재의 증거였다. 작가들은 리서치와 아카이빙, 그리고 현장에서의 제작을 통해 기술과 감각, 지역과 세계,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경계선을 연필로 번지듯 흔들었다. 작품 앞에 서면 감각은 늘 ‘설명’보다 앞서 도착했고, 설명은 뒤늦게 따라와 그 흔들림을 조심스레 문장으로 봉합했다.
전시장의 한쪽에서는 스피커의 저역이 철제 바닥을 타고 몸으로 들어왔다. 그 울림은 문래동 철공소의 모루 소리와 불꽃의 파편을 되감기하는 리버스 필름이 되었다. 나는 예전의 내가 걷던 골목을 현재의 발로 다시 밟고 있다는 사실을, 그저 미디어가 아니라 ‘관계’가 작동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 기획은 요컨대 ‘관계적 지역학’과 ‘기술의 생동성’에 관한 것이었다. ‘지역—기관—작가’가 서로를 미세하게 교정하는 과정, 그 접촉면에서 기술은 차갑지 않았고, 지역은 낡지 않았다. 작품들은 도시의 빈자리를 감추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재생’이 폼나는 외장재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임을 설득했다. 버려진 것의 목록을 덧칠하는 대신, 남은 것의 온도를 오래 붙잡는 태도. 도시가 그 태도를 배울 때, 우리는 파괴와 성장을 같은 문장 안에 둘 수 있게 된다.
전시를 보고 문래동을 훑었다. 문래의 ‘핫플’과 이어진 동선은, 유행의 표면을 핥는 관광이 아니라 기억의 지층을 만져보는 답사에 가까웠다. 골목은 안내판 없이도 방향을 가르쳐 주었고, 나는 발로 쓴 문장을 눈으로 다시 읽었다. 그때 깨달았다. 도시가 우리에게 남긴 참된 선물은 편의나 속도가 아니라 ‘다시 만남’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그 가능성을 발견할 때 오는 쾌감이 나같은 도보여행자에게는 ‘특혜’다. 기계가 찍어낸 이미지 너머, 우리가 함께 살아낸 윤곽을 다시 그려보는 일—그것이야말로 영등포가 내게 가르친 글쓰기의 방식이며, 오늘도 내가 걷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