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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 두 개의 심장, 두 개의 풍경

에스콘필드에서 고시엔까지_오사카 <고시엔구장>






올해 초, 나는 삿포로의 에스콘필드를 찾아갔다. 한겨울이라 야구 시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곳은 여전히 숨을 고르는 대신 숨을 들이마시는 경기장처럼 활기찼다. 작년에 한일야구 올스타전이 열렸던 장면을 TV 너머로 바라보며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는 바람을 품었고, 그 바람은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현실이 되었다. 에스콘필드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마치 유리구슬 속에 갇힌 미래 도시를 몰래 들여다보는 방문객이 된 듯했다. 햇빛을 머금고 투명하게 빛나는 개폐식 돔, 세세한 정보까지 보여준 관람 동선, 경기장 밖으로는 풍경화처럼 걸린 자연까지—눈앞의 모든 장면이 ‘야구장은 아름다움이라는 장르에도 속할 수 있다’는 믿음을 새로 만들었다. 그 찬란함 앞에서 잠실구장은 빛바랜 오래된 카드처럼 순간적으로 초라해 보였고, 함께 투어를 돌던 두산 베어스 치어리더들도 같은 숨을 내쉬며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조용히 공유했다.


이번 오사카 여행에서도 야구장은 빠질 수 없는 필수 목적지였다. 오사카에는 오릭스 버팔로스의 교세라 돔 오사카가 있지만, 내가 향한 곳은 한신 타이거스의 성지, <한신 코시엔 구장>이었다.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자리한 이 구장은 1924년 개장 이래 일본 프로야구의 역사와 함께 걸어온 살아 있는 연대기다. 봄·여름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이 오래된 경기장은 돔구장과 달리 자연광과 바람을 품으며, 잔디와 흙이 만들어내는 명암의 대비로 고전적 미학을 완성한다. 수차례 보수를 거쳤지만 원형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어, 전통과 현대가 서로 무리한 양보 없이 절충한, 조금은 느린 호흡의 공간이었다.


난바역에서 한신선 열차로 갈아탔을 때, 여행은 이미 절반쯤 고시엔에 닿아 있었다. 첫 칸에 앉은 덕분에 기관사의 유니폼과 앞 풍경이 그대로 보였고,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영화였다. 한신선은 오래된 필름의 한 장면처럼 잔잔한 진동을 품고 달렸고, 역마다 들리는 브레이크 소리는 “조금만 더, 곧 목적지가 나타날 거야”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야구장이 목적지이기 이전에, 그곳으로 향하는 이 길 자체가 이미 낭만이었다.


고시엔의 외관은 마주 보는 순간 발걸음을 붙잡았다. 담쟁이덩굴이 세월의 손짓처럼 경기장을 감싸고 있었고, 짙은 녹색은 수십 년의 환호와 침묵을 견뎌낸 기억처럼 은근한 깊이를 드러냈다. 벽돌은 날씨에 따라 금빛과 잿빛 사이를 오가며 다양한 표정을 지었고, 정문 위의 ‘KOSHIEN’ 글자는 바람을 막아내듯 단단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곳은 꿈이 밟아 지나간 자리’라고 속삭이는 듯한 분위기—그것만으로도 고시엔은 하나의 거대한 무대이자, 일본 야구 문화의 역사다.


야구장 투어는 소수 예약제로 진행되었고,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진행자는 내가 일본어에 능숙하지 않다는 걸 알아채자 한국어 설명 사이트를 알려주었고, 코스마다 번호를 들어 안내해주었다. 나는 그 숫자를 눌러 설명을 읽으며 따라갔다. 처음 방문할 때는 한신 타이거스를 향한 팬심이 없었는데, 유니폼을 입어보고, 덕아웃에 들어서고, 구장의 숨결을 직접 느끼는 동안 어느새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한 애정이 움트기 시작했다. 박물관 입구에서 받은 선수 포토카드 속 인물이 지금은 나의 ‘최애 선수’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여행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쉽게 기울게 하는지 보여주는 작은 일화일 것이다. 경기 전, 구장을 관리하는 직원들의 장인정신에는 감탄을 넘어 경의를 느꼈고, 박물관의 디테일과 구장 전경은 묘한 벅참을 남겼다. 그날 저녁 한신 타이거스는 승리했고, 재팬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마치 나의 작은 입덕을 축하라도 하듯.


삿포로의 미래적인 구장에서 시작된 여정은 오사카의 오래된 서사시 같은 구장에서 끝났다. 하나는 투명한 도시의 심장처럼 뛰었고, 다른 하나는 전통의 맥박을 천천히 이어갔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심장, 서로 다른 두 개의 풍경이 내 여행의 서사를 한층 깊게 만들어주었다. 어느새 나는 두 도시의 야구장에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내어주고 있었다. 하나는 미래를 꿈꾸게 했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되새기게 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야구를 사랑하게 된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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