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LX Factory><미라리>
오후 늦게, 리스본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대충 풀고 저녁에 시간을 보낼 장소를 숙소 근처로 물색했다. 숙소는 관광지 인근이 아닌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있는 알칸타라 Alcântara 지구에 있다. 이 근방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공간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7년 전에도 가본 곳인데, 황량한 지역에 이 공간만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2025년에도 여전히 핫한 성지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리스본 강가를 따라 걸었다. 도보로 약 15분 정도 지났다. 어느 순간 오래된 시간의 껍질을 두른 한 공간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철제 구조물과 붉은 벽돌, 그리고 그 위를 덮은 알 수 없는 수많은 낙서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 <LX Factory>는 과거의 산업적 숨결 위에 창의와 자유가 피어난 작은 우주다.
후문 쪽에 비비드한 외벽 그림이 시야를 압도했다. 과거 산업시설이었던 이곳은 현재 혁신의 중심지로 탈바꿈하였다. 1846년에 설립된 방직 공장이 자리하였던 이 공간은, 이후 산업 활동의 중심지로 활용되다가 2008년부터 문화와 예술이 융합된 창의적인 허브로 재탄생하였다. LX 팩토리는 넓은 부지에 호스텔, 서점, 상점, 레스토랑, 카페, 갤러리, 공동 작업 공간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울로 치면, 문래동이나 성수동과 같은 공간이다. 예술가, 디자이너, 기업가들이 모여 창작 활동을 하고 있으며, 골목마다 스트리트 아트와 벽화가 가득하다. 처음 이곳을 마주했을 때, 마치 버려진 공장에 발을 들인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한 걸음, 또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설수록 풍경은 달라진다. 녹슨 철문 틈 사이로 커피 향이 새어나오고, 무심하게 그려진 그래피티 아래서 기타 선율이 흘러나온다. 오래된 인쇄소였던 공간은 지금은 서점으로 탈바꿈되어 있고, 천장에는 날아오르듯 매달린 자전거 조형물이 공간을 유영하고 있다. 바로 그 서점, Ler Devagar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시간도 함께 넘겨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LX Factory는 단순한 복합문화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리스본이라는 도시가 품은 자유와 저항, 그리고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이 집약된 장소다. 낮에는 햇살이 오래된 창을 타고 흘러내리며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비추고, 밤이 오면 네온 불빛 아래 거리의 그림자들이 음악과 함께 춤을 춘다. 레스토랑에서는 포르투갈 전통요리와 현대적인 실험이 어우러진 식탁이 차려지고, 거리 시장에서는 손으로 만든 보석과 책, 오래된 카메라와 낡은 사진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린다.
LX Factory 정문으로 나왔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다. 처음에 왔던 길과 다른 방법으로 발길을 옮겼다. 구글 지도 어플이 알려주는 길로 걷다가 지나가는 무언가에 마음이 뺏기면 한동안 지도를 확인하지 않고 걷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지도 어플을 켜면 약간 벗어난 곳에 내가 서 있게 된다. 꼭 그럴 때마다 우연한 발견을 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수명이 다한 건물 같지만, 그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라리 Mīrārī는 19세기 철강 주조 공장의 폐허를 재생하여 2023년에 문을 연 복합 문화 공간이다. 예술, 음악, 음식, 커뮤니티가 어우러지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리스본의 창의적인 에너지가 흘러 넘쳤다. 미라리는 고정된 틀 없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을 지향한다. 거친 벽면과 자연이 어우러진 인더스트리얼한 미학은 방문객들에게 도시 속의 이색적인 휴식처를 제공한다. 젊은 친구들도 방문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들도 보였다. 이곳은 예술 전시, 거리 예술, 조각, 라이트 프로젝션 등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수용하며, 지역 및 국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공간을 지속적으로 재구성하고 있었다.
스택 스매시 Stack Smash의 버거, 라 마타 La Matta의 나폴리식 피자, 알로하 Aloha의 포케볼 등 다양한 스트리트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다. 주기적으로 새로운 셰프와 브랜드를 초청하여 미식 경험을 확장하였다. 또한, 주말에는 빈티지 패션 마켓, 수공예 장터, 팝업 마켓 등이 열린다. 자세히는 몰라도 매일 밤 현란한 퍼포먼스가 열릴 것 같았다. 미라리는 LX Factory와 함께 리스본의 창의적인 문화 지형을 경험하는데 꼭 가봐야 할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