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리스본 | 삶 속에 걸린 미술관





리스본의 거리를 걷는 일은 예술과 삶 사이를 거니는 일이다. 리스본은 도보여행자에게 특화된 도시다. 도시의 낡은 벽마다 스며든 색채들은 단지 장식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며 말없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목소리였다. 들리지 않아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특히 알파마 골목길을 따라 걷다 만난 Street Art Giochi의 작품 앞에서는 한참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한 여성 분의 얼굴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루아 나탈리아 코레이아 Rua Natália Correia는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사회운동가였다. 나탈리아 코레이아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 거리에는, 그녀의 정신을 품은 벽화들이 자유롭게 숨을 쉬고 있었다. 벽은 말 없이 존재하지만, 그 위에 얹힌 그림과 글귀, 그리고 그 배경을 이루는 도시의 햇살은 우리로 하여금 머물게 하고 사진을 남기게 만들었다,


리스본의 그라사 지구를 걷다 마주한 셰퍼드 페어리의 Peace Guard는 마치 한 시대의 목소리가 벽 위에 정지된 듯한 인상을 남겼다. 리스본의 벽화 중 가장 몰입도가 높았던 작품이다. 게다가 셰퍼드 페어리는 내가 흠모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오래된 건물 벽면 가득 채워진 거대한 여성의 얼굴은 강인하면서도 고요했다. 그녀는 혁명적인 붉은 베레모를 쓰고 있었고, 그녀가 들고 있는 총구 끝에는 총알 대신 붉은 카네이션 한 송이가 꽂혀 있었다. 그 단 하나의 꽃은, 말보다 강한 침묵처럼 깊고 단단하게 그 자리에 피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앞에 서서 오래도록 그 조용한 저항을 바라보았다.


리스본의 골목을 걷는 일은 마치 오래된 꿈을 더듬는 것과 같다. 햇살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는 건물 외벽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예상치 못한 모퉁이에서 커다란 벽화를 만나게 된다. 벽은 더 이상 단순한 벽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이 머문 풍경이고, 침묵 속에서 말하는 목소리이며, 도시가 내는 숨결처럼 느껴진다. 벽면 위로 펼쳐진 형형색색의 그림들은 리스본이라는 도시의 고백 같았다. 한때 낡고 버려졌던 공간들이 이제는 작가들의 손을 거쳐 이야기를 품은 벽이 되었고, 그 위에 남겨진 색채와 붓질은 바람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을 삶의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리 벽에 작가들의 이름이, 그들의 흔적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던 장면이었다. 누가 그렸는지 모를 익명의 벽화들도 많지만, 어떤 그림들 앞에서는 작가가 스스로 남긴 사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름을 보고 있으니 마치 그들과 조용히 인사를 나눈 것 같았다. 이것이 진정한 도시의 미술관이자 공공의 시집이 아니겠는가. 정해진 틀도 없고, 과시하려는 기색도 없지만, 그 자유로움이 오히려 작품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산타클라라 시장은 또 다른 감동을 안겨주는 예술의 무대였다. 평소에는 벼룩시장으로 활기를 띠던 이 공간이, 전시가 열리는 날이면 묘하게 조용하면서도 풍성한 숨결을 품는다. 오래된 시장 건물 안에는 지역 예술가들의 회화, 설치미술, 수공예품이 어우러져 있었고, 그 속을 걷는 나 역시 어느새 작품의 일부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간은 특별히 꾸며진 것도 아니고 화려하게 조명된 것도 아니었지만, 그 투박한 벽과 낡은 천장, 햇살이 스며드는 창문 사이로 예술은 묵묵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상업성과는 멀지만, 그만큼 진실되고 깊은 감정이 작품에 스며 있었고, 도시의 시간을 오롯이 껴안고 있는 공간이었다.


리스본은 그렇게 예술을 '장소'가 아니라 '삶' 속에 스며들게 만든다. 거리마다 다른 호흡으로 그림을 그리고, 시장 안에서도 시를 짓는 사람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이곳의 예술은 높이 걸린 갤러리의 액자 속이 아니라, 계단 옆, 창틀 아래, 그리고 낡은 벽면 위에 있다. 리스본의 예술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바라보게 하고, 머물게 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감정을 발견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리스본을 떠난 후에도 그 거리의 벽화들은 마음 한켠에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삶의 어느 순간 불현듯 떠오른다. 마치 스탠딩에그의 ‘오래된 노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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